보 학 기 고

제목: 선비들의 스승 신독재 김집(金集) (56)
이름: 芝谷/良中


등록일: 2012-03-28 21:35
조회수: 1982


성복에 관한 문제입니다. 󰡔오례의󰡕는 전혀 윤서가 없습니다. 어찌 아버지에 대해서는 순전히 상복만을 착용하고, 임금에 대해서는 상복과 조복을 뒤섞어 착용하는 제도가 있겠습니까. 전함을 지닌 사람들이 일반 사인들과 마찬가지로 흰옷을 입는 제도는 더더욱 온당하지 않으니, 속히 지휘하시어 백관들로 하여금 미리 최복을 마련해 놓았다가 발인할 때 입고 들어와서 의식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오늘날 입는 단령은 끝자락을 감쳐서 꿰매도록 하여 포모, 포과각대, 백화 등과 함께 착용하는 것으로써 시사복을 삼을 것이며, 또 전함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성복하도록 하십시오.

  조조하는 데 관한 문제입니다. 󰡔예기󰡕 단궁 하 편에 이르기를, ‘상여가 떠날 때 조묘를 뵙게 하는 것은 죽은 이의 효심을 따르는 것이다.’ 하였는데, 이는 중요한 절목입니다. 그러나 국제에는 이 절차가 없으니, 아마 강론을 거쳐 결정하여 행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반곡하는 데 관한 문제입니다. 예서에는,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곡할 때 서쪽 계단으로 올라와 동쪽을 향해 서며, 다른 여러 상주들은 당 아래에서 동쪽을 향해 서되 북쪽을 상석으로 친다. 부인들이 들어오면 남자 상주들은 곡용을 하면서 조계를 통해 올라오고, 주부는 방으로 들어간다.’하였습니다. 또 주자는 이르기를,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곡할 때 당에 오르는 것은 죽은 이가 기거하던 곳을 되돌아보는 것이고, 주부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은 이를 봉양하던 곳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제에는 이 절차가 없으니, 고례를 따라야 마땅합니다.

  부사하는 데 관한 문제입니다. 󰡔예기󰡕 단궁 하 편에는, ‘이튿날-졸곡의 이튿날- 할아버지의 사당에 부사한다. 유고가 있으면 변역하여 길제로 옮겨간다.’ 하였고, 또 󰡔의례󰡕 사우례 편의 주석에는 ‘이튿날 반열에 맞추어 부사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제에는 이 절차가 없으니, 아마 강론을 거쳐 결정하여 행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이와 같은 김집의 간곡한 정성에 대하여 임금이 다음과 같이 비답(批答)을 내렸다.

  이에 대해 상이 직접 글을 써서 비답하였다.
“올린 7개 사안은 참으로 지금 당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다. 그 절실한 뜻에 탄복했고 권념의 후의에 감격했다. 다만 모두 문제만을 제기하고 구체적 언급이 없으니, 경이 좀더 분명하게 가르쳐준다면 내 어찌 감히 조종의 중하신 부탁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대로 실행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끝에 말한 한 대목은 나로서도 마음속에 늘 잊지 않고 있으면서도 한편 어렵게 여기고 있는 터인데, 이제 다시 상량하여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상례를 논한 한 책은 극히 상세하고 포괄적이어서 예관과 대신들로 하여금 익히 강론해서 처리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경이 수부의 직을 또 사양한 것은 나로서는 매우 서운하여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양하지 말고 나의 지극한 소망에 부응해 주기 바란다. 원소는 내 곁에다 두고 항상 보고 또 보려고 내리지 않는다.”
  

  위의 글은 󰡔신독재전서󰡕의 「연보」에 나오는 글이다. 여기에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결론을 짓고 있다.

  선생의 예에 관한 논설들은 모두 고례에 의거하여 󰡔오례의(五禮儀)󰡕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은 것으로서 비록 그 당시에는 다 채택되지 못했으나, 숙묘 경자년(1720, 숙종46) 대상에 뭇 신하들이 참최를 입었고, 영묘 정축년(1757, 영조33)에 󰡔상례보편(喪禮補編)󰡕을 편찬하면서는 오로지 문원공의 󰡔상례비요(喪禮備要)󰡕 등 제서 및 선생의 저술인 󰡔고금상례이동의(古今喪禮異同議)󰡕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고례가 점점 회복되었고 국가의 제도도 비로소 크게 갖추어졌다.

  󰡔고금상례이동의󰡕의 실상을 살피기 위해 예문을 하나 들어 본다.

부(祔)
  〔의례경전〕그 다음날에 반열에 맞추어 부(祔)한다. ― 사우례(士虞禮)의 주 ―
○그 다음날 조부(祖父)에게 부한다. 상례가 점점 변하여 길제(吉祭)로 가게 되는데, 부(祔)까지는 반드시 매일매일 이어서 행한다. ― 단궁 하 ―
○부장(祔杖)은 당(堂)에 오르지 않는다. ― 상복소기 ―
○주자(朱子)는 이르기를, “예란 원래 선왕(先王)이 인정(人情)에 의하여 만든 것이다. 길흉(吉凶)의 사이는 점차적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는 전부 산 사람을 섬기는 예로 모시다가 졸곡(卒哭)이 지나고 부묘(祔廟)를 하고서는 비로소 신(神)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차마 일시에 다 바꿔버릴 수 없기 때문에 신주를 다시 정침(正寢)으로 모시고 생전에 섬기는 예로 섬기는 것이다.” 하였다.
  
  신이 살펴보건대 주자가 이르기를, “새로 죽은 자를 그의 조부의 사당에 부(祔)하는 것은 결국 조부는 장차 다른 사당으로 옮겨지고 새로 죽은 자가 그 사당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고하는 의미인데, 지금은 공사(公私) 모두 사당 제도가 서쪽을 상(上)으로 치고 같은 당(堂)에다 실(室)만 달리할 뿐 다시 좌소우목(左昭右穆)의 서차가 없기 때문에 한 번 자리를 옮기게 되면 여러 실을 다 옮겨야만 한다. 그리하여 새로 죽은 자는 당연히 자기 아버지가 계시던 실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 고례와는 다른 큰 절목인데도, 지금 예를 지킨다고 하는 이들이 ‘조묘에 부한다’는 기록만을 고집하고 있어 아무런 의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도를 당장 바꾸어 아버지 사당에 부하기로 하면 그것은 또 형식적이나마 고례를 아낀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의거해 보면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큰 절목인데도 국제(國制)에는 없으니, 강론하여 새로 정해서 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祔)라는 것은 삼년상을 마친 뒤에 그 신주를 조상의 곁에 모시는 행위이다. 이것은 󰡔의례󰡕에 분명히 그 순차까지 명시되어 있는데, 󰡔국조오례의󰡕에는 실려 있지 않으므로 김집이 이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사안이 있을 경우, 먼저 󰡔의례󰡕의 원문을 제시하고 󰡔국조오례의󰡕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그 밑에 김집 자신이 스스로 여러 예학서를 참고하여 밝힌 사실을 기록해 놓음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김집은 예를 공부하고 정리하며 그것으로써 사회와 국가의 올바른 운영을 원했던 전형적인 예학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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