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학 기 고

제목: 선비들의 스승 신독재 김집(金集) (57)
이름: 芝谷/良中


등록일: 2012-06-10 12:39
조회수: 2746


4. 김집 예학의 영향
  
  김집이 이룩한 예학은 사실 독자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그의 부친 김장생과 김집이 동시에 한국 예학의 최고 수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굳이 나누어 말하면 김장생은 어두운 방에 비친 촛불처럼 예학의 서막을 열었다면, 김집은 그것을 온전히 이어 완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집이 󰡔고금상례이동의󰡕를 완성하자, 김상헌이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이 책을 평가하였다.

  신이 살펴보건대 김집이 지어 올린 󰡔고금상례이동의󰡕는 살피고 근거를 댄 것이 자뭇 상세하여 가히 노사숙유(老士宿儒)가 대대로 전한 전문적인 가문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효종실록(孝宗實錄)󰡕 즉위년, 6월)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김장생과 김집의 예학은 가문의 전문적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김집의 예학은 김장생의 예서를 보충하는 단순한 교정이나 편집에서 그친 것이 아니고,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더하는 발전적인 작업이었다. 따라서 김집의 노력에 의해 김장생의 예학서들은 완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한국 예학의 완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김집의 예학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장생의 예학과 구분되는 김집 예학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공적 예절인 󰡔국조오례의󰡕의 재정리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예학의 국가적 확대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러한 노력이 효종 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효종이 예에 밝고 예제의 재정비를 원했으므로 김집이 적극적으로 왕조례(王朝禮)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김집의 이러한 시도는 그의 예학이 개인적인 가례에서 공적인 왕조례의 개혁에까지 학문적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김집이 󰡔주자가례󰡕가 아닌 󰡔의례󰡕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의 고례 존중의식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는 그의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꾸준히 발전해왔다.
  김집의 예학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문생의 교육에서 예를 우선적으로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김집의 제자들은 예를 통달하지 못한 자가 없을 정도였으며, 이러한 학파의 분위기가 응집되어 앞에서 검토한 것과 같은 예학서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여러 역사 기록에서 김집의 예학에 영향 받은 사실을 발췌한 것이다.

  전에, 시강원이 졸곡 전에 고사에 따라 왕세자의 서연을 열기를 청하니, 예관에게 물으라고 답하였다. 또 분부하기를󰡒세자가 졸곡 전에 서연을 연 것이 어느 때의 고사인가?󰡓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강원에 물어보건대 무신년 3월에 올린 본원(本院)의 계사(啓辭) 속에 졸곡 전에 서연을 열어 때에 미쳐 도와 인도하라는 말이 있다 하고, 또 듣건대 선조(宣祖)께서는 명묘(明廟)의 졸곡 전에 경연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미 경연을 열었다면 세자의 서연을 열지 않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왕세자께서 강학(講學)을 중지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국상이 난 달이 지난 뒤에는 서연을 여는 것이 합당합니다. 듣건대 선조께서 졸곡 전에 경연에 거둥하셨다 하니, 그렇다면 서연을 여는 것은 더욱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하니, 따랐다. 이어 서연할 때의 복색(服色)을 강론해 결정하라고 명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직령의(直領衣)와 상투를 싸서 드리우는 두 가닥의 띠는 모두 약간 세밀한 생포(生布)를 사용하고, 요대(腰帶)는 약간 가볍고 세밀한 생마(生麻)를 사용하고, 신은 백피(白皮)를 사용하며, 강관은 최복(衰服)으로 입시하는 것이 마땅하니 사부에게 물어보소서.󰡓하니, 따랐다.

  세자부(世子傅) 이경석이 아뢰기를󰡒세자를 도와 인도하는 일은 하루가 급합니다. 해조가 정한 바의 복색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마는 다시 노숙한 덕을 가진 원임(原任) 및 예를 아는 신하들에게 물으소서.󰡓하였다. 영돈녕 김상헌이 아뢰기를 "왕세자의 강학이 과연 하루가 급하지만 재궁(梓宮)이 빈소에 계신데 한 쪽에서 개강(開講)하는 것은 인정으로 보나 예문으로 보나 온당하지 않습니다. 요순(堯舜)의 도는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왕세자께서 어린 나이에 익힐 바는 더욱 효제를 우선으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산릉에 장사 지내기 전에는 우선 정강(停講)하였다가 졸곡이 지난 뒤에 비로소 서연을 열어 학문의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예에 합당할 듯합니다.󰡓하였다.

  김집․권시․이유태 등이 아뢰기를 “왕세자께서 졸곡 전에 비록 평일처럼 서연을 열 수는 없지만 옛 사람들이 상중(喪中)에는 상례를 읽은 뜻에 의거하여 강학(講學)을 폐하지 않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그리고 복색은 해조가 정한 바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하였다.
  상이 분부하기를󰡒영돈녕이 올린 의논을 보고는 재삼 음미해 마지않았다. 경(經)은 만세의 상도(常道)이기 때문에 일시의 연고로 권도(權道)를 쓸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효제의 도이겠는가. 나는 말세에서 순전히 권도만을 쓰는 것을 미워한다. 영돈녕의 의논에 따라 시행하라.󰡓하였다. (󰡔효종실록(孝宗實錄)󰡕 원년,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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