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학 기 고

제목: 선비들의 스승 신독재 김집(金集)(59)
이름: 芝谷/良中


등록일: 2012-12-22 13:59
조회수: 1119


신이 생각하건대 시법의 허다한 글자 중에 어찌 성덕(聖德)을 형용할 만한 다른 글자가 없기에 반드시 열성의 시호를 겹쳐 사용하는 것을 꺼리지 않으려 하십니까. 하물며 공이 있으면 조(祖)라 하고 덕이 있으면 종(宗)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조가 종보다 더한 것이 아니고 종이 조보다 덜한 것이 아닌 데이겠습니까. 신이 바라건대 전하께서 큰 도량을 넓게 여시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자세하고 명확하게 연구하여 잘 조처하시면 아마도 알맞게 될 것입니다. 국가 대사는 진실로 신이 입을 놀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마는, 즉위하신 초기에 뭇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지 않게 해서는 마땅치 않기에 인심의 소재를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생각건대 전하께서 조종의 부탁을 받으시어 어려운 시운을 만나셨으니, 책임이 지극히 무겁고 지극히 어렵습니다. 󰡔서경󰡕에 갓 태어난 아이와 같아 교도(敎導)하는 것이 그 초기에 있지 않음이 없다.󰡑하였고, 또󰡐지금 우리의 초복(初服)에서 알 수 있다.󰡑하였으니 삼가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아, 지금의 국사는 안으로는 조정이 편안하지 못하여 기강이 문란하고, 밖으로는 변방이 날로 시끄러워 백성들이 근심하고 있습니다. 충현(忠賢) 중에는 복심처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고 변방의 장수 중에는 간성(干城)의 재목이 없으니, 이 몇 가지만 보아도 그 나머지는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 폐단을 구제하고 회복을 도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을 일일이 거론하자면 어찌 말로 이루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참람되이 어리석은 소견을 올려 성덕의 만 분의 일이나마 도울까 합니다.

  우의정 조익이 상차하기를 “삼가 살피건대 󰡔주자가례󰡕 소상조(小祥條) 진연복(陳練服) 주(註)에󰡐남자는 연관(練冠)을 쓰고 수질․부판․벽령․최(衰)를 제거한다.󰡑라고  하였고, 구준(丘濬)의 의절(儀節)에는󰡐복문(服問)에 이르기를 「삼년상의 경우, 연제(練祭)를 지낸 뒤에는 공최(功衰)를 입는다.」 하였고, 󰡔잡기(雜記)󰡕의 「부모상에도 공최를 입는다.」고 한 귀절의 주에 「삼년상을 지내면서 연제를 행한 뒤에 입는 최복(衰服)은 승(升)의 수가 대공(大功)과 같기 때문에 공최라고 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므로 소상(小祥) 때에 따로 최복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헤아려 보건대 관은 조금 고운 마포(麻布)로 만들고, 복장은 일체 대공의 최복과 같이 하되 포(布)는 조금 거친 마포로 해야 될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위의 주장을 살펴보건대 소상복에는 숙포(熟布)로 최복을 만들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신이 요즈음 이모저모로 상고하고 검토해 본 결과 그렇지 않으리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위에 인용한 복문과 잡기의 공최에 대한 글을 살펴보건대, 소상에 별도의 최복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주에는 승(升)의 수가 대공과 같다는 점만 언급했지 연숙(練熟)한 포(布)를 써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건대 연제를 지낸 후의 최복은 그 승의 수가 연제를 지내기 전과 비교해서 촘촘하기는 하지만, 포 자체는 표백하지 않는 생포(生布)를 그대로 쓰는 것인 듯합니다.

  또 󰡔단궁(檀弓)󰡕을 상고하건대󰡐연제를 지낸 뒤에는 황색으로 안을 받치고 적색으로 선을 두른다.󰡑고 한 귀절의 소(疏)에󰡐소상이 되면 연관(練冠)과 연중의(練中衣)를 착용하기 때문에 소상을 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연의(練衣)라는 것은 연(練)으로 중의(中衣)를 만든 것이고, 황리(黃裏)라는 것은 황색으로 중의의 안감을 삼는 것이다. 정복(正服)은 변할 수 없지만 중의는 정복이 아니기 때문에 최복의 형식만 빌리는 것이다. 전은 옅은 적색이고, 정복은 최복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소상 때에는 관과 중의만 연사(練絲)로 하고 최복은 연사로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의절(儀節)󰡕의 이른바󰡐소상에 별도의 최복이 있다.󰡑고 한 말은 옳지만,󰡐숙포(熟布)로 최복을 만든다.󰡑고 한 말은 그렇지 않을 듯합니다.

  삼가 󰡔오례의󰡕를 살펴 보건대󰡐소상복에 연관(練冠)만 쓰지 최복은 변하지 않는다.󰡑하였고, 선왕조의 󰡔등록(謄錄)󰡕에도 모두 이 제도를 쓰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가례󰡕의 소상조를 적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금 공사 간의 모든 예(禮)에 󰡔가례󰡕를 적용하고 있으니, 이에 의거하여 행하는 것이 본래 당연하긴 합니다.
그러나 예는 절문(節文)이 있는 것으로서, 옛사람들이 예를 만든 본래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기󰡕에 이르기를󰡐상사(喪事)는 갈수록 낫게 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가벼운 복(服)으로 바꿔 입게 되는 것이다.󰡑하였는데, 간전(間傳)의 글을 보건대󰡐참최(斬衰)의 포는 처음엔 3승으로 했다가 우제(虞祭)와 졸곡(卒哭)이 지나면 성포(成布) 6승으로 한다.󰡑하였고, 복문과 잡기에 의거하건대󰡐소상이 지난 뒤에 포의 승수(升數)는 대공복(大功服)과 같다.

그런데 대공복의 경우 강복(降服)은 7승이고 정복(正服)은 8승이니, 이 소상의 경우는 7승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대상(大祥) 때에 흰 마포(麻布)는 15승짜리로 하고 심의(深衣)는 마(麻)로 하는데, 담제(쩘祭) 때 섬(纖)을 입는 것은 곧 길복(吉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옛 제도에 의거하건대 초상 때부터 복을 벗을 때까지 점차 변복하는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례󰡕에 변제(變制)에 대한 사항이 없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내용이 불충실한 듯싶습니다.

인주(人主)가 행하는 예는 온 나라의 의칙(儀則)이 되는 만큼, 이 한 절목은 마땅히 옛제도에 의거하여 연포관(練布冠)을 만들고 또 연중의(練中衣)와 최복을 만들되 약간 촘촘한 생포(生布)로 만들어야만 점차 변복해 가는 옛사람의 도에 합치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상으로부터 인평대군까지의 복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되고 친상을 당한 온 나라 사람들도 이 제도를 따라야 하겠습니다만, 백관의 복제의 경우는 본래 옛제도를 따른 것이 아니라 그저 후세의 조복(朝服)에 맞추어 포(布)로 만든 것인 만큼 꼭 바꿀 필요 없이 옛날 그대로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예관으로 하여금 다시 상고하여 품처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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