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학 기 고

제목: 기호유학에서 김장생. 김집의 성리학적 연구
이름: 芝谷/良中


등록일: 2013-09-29 15:18
조회수: 993


기호유학에서 金長生 · 金集의 성리학적 위상

                                                          황의동(충남대)
1. 시작하는 말
2. 기호유학의 흐름과 성리학
3. 김장생의 율곡성리학 계승
4. 김집의 실천적 성리학풍
5. 맺는 말 - 김장생 · 김집의 성리학적 위상 -

1. 시작하는 말

金長生(沙溪, 1548~1631)과 金集(愼獨齋, 1574~1656) 부자는 율곡학파의 嫡傳으로 文廟에 從祀된 東國 18賢들이다. 사계 · 신독재 부자는 모두 17세기 예학시대를 선도했던 인물로 높이 평가 받는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유학사적 평가 또한 성리학적 측면보다는 예학적 측면에서의 평가가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五賢粹言」에서 趙光祖의 材志, 李滉의 德學, 李珥의 理氣, 宋時烈의 義理와 더불어 金長生을 󰡐禮學󰡑으로 특징지어 말하는 것은 물론, 李圭景이 李滉의 德, 柳馨遠의 經綸, 金尙憲의 節義, 徐敬德의 天文과 함께 金長生의 󰡐禮學󰡑을 일컬어 東國 第一의 人材라고 말한데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17세기 예학시대를 주도했던 기호의 同春堂 宋浚吉, 尤菴 宋時烈, 草廬 李惟泰, 市南 兪棨, 魯西 尹宣擧 등이 김장생, 김집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는 데서 이들의 예학적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성리학적 측면에서 김장생, 김집 부자의 위상을 가늠해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성리학은 율곡의 성리학을 충실하게 계승한 성격이 매우 짙고, 특히 김집의 경우는 그의 저술 속에 특별히 참고할 만한 성리학적 저술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호 성리학을 대표하는 율곡의 성리학설이 이들 부자를 통해 전승되고 保守되었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유학사적 위상을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먼저 기호유학의 흐름을 성리학적 측면에서 검토해 보고, 김장생과 김집의 성리학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다만 김집의 경우는 체계적인 성리학설 보다는 그의 실천적 성리학풍이 뚜렷이 보인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논구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끝으로 결론을 대신하여 김장생, 김집 부자의 성리학적 위상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2. 기호유학의 흐름과 성리학

  조선조 유학의 흐름은 크게 보아 畿湖儒學과 嶺南儒學으로 대별되어 전개되어 왔다. 또한 내용면에서 본다면 性理學을 주류로 陽明學, 禮學, 實學 등이 17세기 이후 성리학과 병립하여 발전해 왔다. 여말에 수입된 성리학은 조선 건국과 함께 나라의 지도이념으로 자리 잡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15세기 士禍시대를 맞아 수많은 사림들이 희생되었는데, 이 와중에서 道學이 싹 터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이 道學風은 성종 때 佔畢齋 金宗直의 문하에서 발단하여 寒暄堂 金宏弼, 一蠹 鄭汝昌, 靜庵 趙光祖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小學』을 중심으로 한 실천유학이 강조되었다. 이후 16세기는 성리학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晦齋 李彦迪(1491~1553), 退溪 李滉(1501~1570)을 중심으로 한 主理的 성리학풍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花潭 徐敬德(1489~1546)은 우주자연을 대상으로 한 자연철학에 몰두하여 氣學風을 조성하였다.

이 때 李滉과 高峰 奇大升(1527~1572)간에 벌어진 四端七情에 관한 논변을 계기로 조선 성리학은 일층 深化되었고, 퇴계, 고봉 자신의 성리학도 상당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여기서 고봉의 主理, 主氣를 지양한 理氣妙合, 理氣調和의 성리관은 율곡에게도 공감을 주었다. 이 때 퇴계의 성리학설에 傾到되었던 牛溪 成渾(1535~1598)은 道友인 율곡의 설에 이의를 제기하여 양자 간에 다시 성리논변이 전개되었다.

이 역시 율곡, 우계 양인의 성리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自說을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퇴계와 고봉, 율곡과 우계간의 이 성리논변은 조선성리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로 인해 이들의 성리학에 대한 견해가 분명히 드러났으며, 이를 통해 이후 후학들에 의한 계승과 創新의 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학계는 기호유학의 흐름을 󰡐율곡학파󰡑로 單線化시켜온 감이 없지 않은데, 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호유학은 율곡을 중심으로 金長生, 金集, 宋時烈, 宋浚吉, 韓元震 등으로 이어 내려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成渾을 중심으로 尹宣擧, 尹拯으로 이어지는 󰡐牛溪學派󰡑로 전개되어 왔다. 이 우계학파는 멀리 靜庵 趙光祖의 도학에 연원해 있고, 昌寧 成門의 󰡐隱居自守 聖賢自期󰡑의 학풍을 계승하고 있는데, 이는 성혼의 사위인 尹煌을 통해 坡平 尹門의 가학으로 이어졌다.

율곡학파가 영남 퇴계학파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성리의 이론적 계발에 주력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계학파는 내면적 자기수양과 務實학풍을 강조하면서 일면 陸王心學과도 소통하였다. 특히 17세기 병자호란 후 의리와 대의명분론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이들 우계학파는 時中之道에 입각한 신축적인 현실대응 논리를 펴면서 율곡학파와 갈등하기도 했다. 이들의 갈등은 마침내 정치적으로 노론과 소론의 분당으로 이어져 이념적 갈등에서 정치적 대립으로 까지 비화되었던 것이다.

또한 율곡학파 내에서도 栗谷直系系列과 非師承栗谷系列이 있다. 비사승율곡계열은 陶庵 李縡계열과 靜觀齋 李端相계열을 말하는데, 이들은 직접 율곡과의 師承관계는 닿지 않지만 율곡을 私淑하고 尊慕하였다. 성리학적으로 율곡직계계열은 율곡의 학설 이를 테면 氣發理乘一途說이나 七包四의 사단칠정론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지만, 우계학파나 비사승율곡계열은 대체로 율곡의 성리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또 퇴계의 설에 대해서도 일면 용납하여 절충적 성격이 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율곡학파가 우계학파보다 보수적 경향을 가졌다면, 율곡학파 내에서는 율곡직계계열이 비사승율곡계열보다 훨씬 보수적 경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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