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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실록(諱 槃)
이름: 孤巖/準一


등록일: 2015-11-24 06:48
조회수: 735


조선왕조실록(諱 槃)


  전 이조 참판 김반의 졸기 인조 18년 경진(1640, 숭정 13)  4월 5일(병진)  
전 이조 참판 김반(金槃)이 졸하였다. 김반은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며 김계휘(金繼輝)의 손자이다. 사람됨이 충후하여 가훈(家訓)을 잘 지켰으며, 청현직을 역임하였다. 사람들이 근신(謹愼)하다고 칭하였다.【원전】 35 집 86 면

김반(金槃) 인물정보
* 1580(선조 13)∼1640(인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州).
* 아버지는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로 부사 대건(大乾)의 딸이며, 집(集)의
  아우이다.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다.
*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거재유생(居齋儒生)이 되었다.
*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10여년 동안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을 탐구하였다.
*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빙고별제(氷庫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공주로 호종(扈從)하였다가 공주행재(公主行在)에서 실시한
   정시문과에 급제, 호종의 공으로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 그뒤 형조좌랑·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부교리를 거쳐,
* 162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 1626년 인헌왕후가 죽자 이귀(李貴)의 편견을 배척하였다. 곧 이조좌랑에 임명되고, 이어 정랑에
   올랐다.
*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고 돌아와 사인(舍人)·겸보덕(兼輔德)·응교(應敎)·전한(典翰)을
  역임하였다.
* 1635년 병조참지(兵曹參知)·대사간·우부승지·형조참의·대사성·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 이듬해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호종하여 왕에게 장병을 독려하도록 건의하였다. 화의가 이루어지

   자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 그뒤 대사성·예조참판·병조참판·대사헌·한성부우윤·대사간·이조참판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淸陰全集(金尙憲)愼獨齋集(金集)



인조2년(1624)8월 6일(송상인을 집의로 김반을 정언으로 삼다)
송상인(宋象仁)을 집의로, 김반(金槃)을 정언으로 삼았다. 김반은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충후하고 매우 질박했는데, 의논이 순수하고 바르며 가훈(家訓)을 삼가 지켜서 부조(父祖)의 풍도가 있었다.
【원전】 33 집 635 면

12월 22일(김상헌·조익·이준·이윤우·이기조·김반·나만갑 등의 인사를 실시하다)
~ 수찬 김반(金槃)을 부교리로~ 【원전】 33 집 664 면

인조3년(1625)1월 20일(정광경·정세구·김반·송상인에 대한 인사를 실시하다)
~ 김반(金槃)을 사간원 정언으로, 송상인(宋象仁)을 홍문관 교리로 삼았다.【원전】 33 집 673 면

2월 12일(홍서봉·김육·박황·이경증·이기조·김반 등에 대한 인사를 실시하다)
~김반(金槃)을 부교리로~ 【원전】 33 집 678 면



2월 18일(유백증·이윤우·김반·이경의·김주우 등에 대한 인사를 실시하다)
~ 김반(金槃)을 헌납으로~  【원전】 33 집 680 면



3월 19일(윤형언·김반·나만갑·오준에 대한 인사를 실시하다)
~ 김반(金槃)과 나만갑(羅萬甲)을 홍문관 부교리로~ 【원전】 33 집 690 면

9월 28일(김반·김설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헌납으로, 김설(金卨)을 정언으로~【원전】 34 집 35 면



인조4년(1626)1월 24일(헌납 김반이 이귀의 차자로 인해 체직을 청하다)
헌납 김반(金槃)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 옥당에 있을 적에 삼사(三司)가 복합(伏閤)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관원이 회좌(會坐)한 자리에서 병조 판서 이귀(李貴)가 하나의 장문(長文)을 정경세(鄭經世)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글은 곧 이귀가 최명길에게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옥당의 차자 내용 가운데 ‘실상은 왕자 부인의 상(喪)이다.’ 한 것과 ‘종사(宗社)에 죄를 얻을 것이다.’ 한 등등의 말을 뽑아내어 더할 수 없는 비난을 가하였는가 하면 심지어 ‘이 의논을 제기한 사람은 다시 전하를 섬길 수 없다.’고까지 하였습니다.이른바 왕자 부인의 상이라는 한 조목은 먼저 명분을 바루고 나중에 예법에 대한 쟁론을 하자는 데에서 나온 말로 실상은 그렇게 대단히 잘못된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완곡하게 하지 못한 잘못은 있습니다. 종사에 죄를 얻는다는 한 조목에 이르러서는 이는 조어(措語)하는 사이에 범연히 한 말에 불과한 것이고 오늘의 일을 직접 지척(指斥)하여 한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죄목을 삼는다면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서(私書)의 내용을 가지고 애통 중에 계신 성상께 굳이 아뢰는 것은 불가한 것이므로 침묵을 지키면서 지내왔습니다. 이제 듣건대 이귀가 차자를 올려 제신을 비난함에 있어 있는 힘을 다하였다고 하니, 신이 어떻게 감히 끝내 모르는 체하고 피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대저 이번의 상례(喪禮)는 바로 일국의 막중한 일인 것이고 오늘날 말하는 것은 실로 공의(公議)의 절충인 것인데 이귀 한 사람이 이를 번복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아, 사람의 본정(本情)은 살피지 않고 문자 간에 몇 마디 말을 끄집어 내어 집요하게 죄목으로 삼아 전하의 노여움을 격동시키려 하니, 이것이 어찌 군자이겠습니까. 신은 괴이하게 여깁니다. 신은 언지에 있는 몸으로 남의 비난을 받았으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신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사퇴하지 말라고 답하였다.【원전】 34 집 63 면

2월 15일(정세구·김영조·김육·이윤우·김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이조 좌랑으로 삼았다.【원전】 34 집 75 면

8월 28일(헌납 김반이 전시의 폐단에 대해 아뢰다)
헌납 김반(金槃)이 아뢰기를,
“대간의 논계(論啓)는 이미 드러난 일만을 갖고 말해야 하고 의심스러운 일을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별시의 전시에 뒤미쳐 받아들인 5∼6축(軸)을 계청해서 함께 채점함으로써 이로 인해 합격한 자까지 있었으니, 이미 규례에 어긋난 것이며, 매우 구차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이미 드러난 것으로써 놀라운 일입니다. 만일 이렇게 이미 드러난 일에 근거해서 파방(罷榜)과 파직을 논계하였다면, 일은 논하는 사체에 매우 적합하여 인심을 감복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을 발표한 뒤에 사람들의 말썽이 야기되었다.’는 것과 ‘시관의 친속으로서 합격된 자가 가장 많았다.’고 하는 등의 말은, 실로 사람의 현부(賢否)와 일의 허실은 살피지 않고서 쉬이 논단한 것으로써 화평(和平)한 논란이 아닙니다.
아, 전시에는 상피(相避)하는 규례가 없어 예전부터 명관(命官)의 자제들로서 합격한 자가 매우 많았는데, 유독 오늘날의 말세의 습속이 떠들썩하고 논의가 중도를 잃음으로써 심지어 시종 가부를 말하지 않는 상신(相臣)까지 마구 탄핵을 받아 궁지에 빠져 도성을 나갔으니, 이것이 어찌 국가의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신의 좁은 소견은 여러 관원과 다르므로, 그대로 무릅쓰고 있기 어려운 형세입니다. 체척을 명하소서.”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원전】 34 집 136 면


인조5년(1627)6월 25일(김반·윤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이조 정랑으로, 윤지(尹?)를 부응교로 삼았다.【원전】 34 집 211 면

인조6년(1628)1월 19일(김남중·민응형·김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이조 정랑으로 삼았다~【원전】 34 집 252 면



1월 28일(이기조·김반·이행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이조 좌랑으로~ 【원전】 34 집 254 면



2월 28일(속오군의 조련과 급복, 여정에게 포목을 거두는 문제 등 9개 조목에 걸친 도체부 종사관
         김반의 서계 내용)
비국이 아뢰기를,
“도체부(都體府) 종사관 김반(金槃)이 서계하였는데 모두 아홉 조항입니다. 속오(束伍)에 편입된 군병들이 기예를 익히지 않고 무기가 정예롭지 못한 것은 호우(湖右)만 그러할 뿐 아니라 곳곳이 그러합니다. 군병에 이르러서는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이 반반인데 그들에게는 본래의 신역(身役) 이외에 연습을 해야 하는 고통이 겹쳤기 때문에 도망하여 흩어질 폐단은 사세로 보아 필연적인 것이니, 보호하고 구휼하는 방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호패(號牌)를 이미 파하여 통속된 데가 없는데다가 재력이 탕갈되어 은혜를 베풀 계책이 없습니다. 지금 이 점에 대해 우려하여 양반(兩班)들이 거느리는 노복과 연로한 자들을 면제시켜 주고 그들에게 미포(米布)를 거두어 군병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군병이 정예롭고 건장한 자들로 될 수 없음은 물론 군역(軍役)을 면하기 위해 권세가에게 귀속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급복(給復)하려면 팔도에 편성된 속오군이 거의 10만에 이르고 있는데 한 사람에게 수십 부(負)씩 주더라도 수만 결(結)이 됩니다. 이것을 제외하면 해조의 경비를 어떻게 조달하여 쓸 수가 있겠습니까. 당초 영장 사목(營將事目) 안에, 반드시 재예(才藝)를 완전히 익힌 뒤에야 계문하여 급복하게 한다고 한 것은 이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사목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의당하겠습니다.
여정(餘丁)에게 포목을 거두어 편성된 군병에게 지급하려고 했던 것은 그 의의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거둔 것은 해조에 수납케 하라는 명령이 있었고 지금까지 거두지 못한 것은 필시 도망하여 흩어진 사람들일 것인데, 지금 옮겨다가 지급하게 한다면 반드시 분요스러운 걱정이 있게 되어 시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고을의 군병의 다소는 의당 인구의 중과(衆寡)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나주(羅州)·영광(靈光) 두 고을은 인민이 많은데 군병은 적고 진도(珍島)·능성(綾城) 등 여섯 고을은 인민이 적은데 군병은 많으므로 혹은 구차스럽게 충원시키기도 하고 탈루되는 폐단을 면치 못하기도 하여 군액(軍額)이 고르지 못한 것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경상도 관찰사 김시양(金時讓)이 도내(道內)의 군액 상황이 이런 것을 보고는 변통시키기를 계문하고, 호패의 숫자에 의해 10분의 1을 뽑아 속오군에 편입시키자고 했는데 이것이 실로 군액을 충당시키는 좋은 계책입니다. 본도의 감사·병사로 하여금 가부를 상의하게 하여 인민이 적은 데는 군액을 감하고 인민이 많은 데는 군액을 증가시켜 소요스런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수군(水軍)들의 고역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날로 유산(流散)되며 죽기를 작정하고 도피하는 것은 실로 그들을 침학하는 데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국가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은 반드시 감사의 분정(分定)을 거쳐 각 고을에 알려서 수송해 오게 하는 것이 전례입니다. 따라서 군병들의 번가(番價)도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데 본 고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영차(營差)를 보내기 때문에 과외(科外)에 외람되이 징수하는 것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각 고을의 점사(店舍)에 이르러서는 더욱 극심하게 침학하고 있는데 군관과 색리들이 일을 빙자하여 폐단을 부리는 정상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이는 전부터 점인(店人)들이 감내하기 어려웠던 고충이었습니다. 지금 각도의 감사에게 행회하여 일체 통렬히 금단하게 하되 만일 범하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계문하게 하여 중률(重律)로 다스리게 하는 것이 의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양호(兩湖) 연해 지방의 선군과 격군은 새로 군적을 만들 때 이미 액수를 정하여 반포 시행했으니, 반드시 전일처럼 급박할 무렵에 조발했던 것 같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강도(江都)의 일은 일시의 불행스러운 데에서 나온 것인데 어떻게 이것을 끌어대어 전례로 삼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주(全州)의 고을은 보장(保障)이 될 뿐만 아니라 풍패(?沛)의 고향이니 진실로 백성에게 폐단이 되는 것이 있으면 특별히 감면을 허락해야 됩니다. 말을 모는 일은 백성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돌려가며 하도록 분정한 것은 그 역사를 균등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각도가 다 그러하여 지금에 와서 갑자기 고치기는 어려운 것인데, 혼조(昏朝) 때의 일은 지금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적을 새로 작성하는 일에 있어서 전주·무장(茂長)·홍주(洪州)·결성(結城) 등 고을은 군민(軍民)의 폐단을 이런 때에 변통시켜야 하는데, 군적청(軍籍廳)으로 하여금 복계(覆啓)하여 시행케 하소서.그리고 여산(礪山)은 일로(一路)의 곁에 있는 계수관(界首官)으로 주전(廚傳)의 공궤가 다른 고을보다 배나 됩니다. 그런데 임진년 이후 후영(後營)을 설치하고 영장(營將)이 항상 머물러 있는가 하면 병사(兵使)도 매년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는데 한 고을에 두 장수를 머물게 하는 것은 사세상 감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중영(中營)으로 이속시키려 한 것은 소견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남은 고을이 많고 인민도 많은데 이미 전영(前營)을 혁파하고 또 후영을 줄인다면 갑자기 위급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겸하여 통솔하기가 불편합니다. 그러나 본도의 감사·병사에게 문의하고 서서히 의논하여 조처하는 것이 의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진도(珍島)와 영암(靈巖)은 백성은 적고 부역은 무거운데다가 흉년이 겹쳤습니다. 진도는 지금 역적 이공(李珙)이 유배되어 있는 곳으로 파수하고 순라하는 고통이 다른 고을에는 없는 것으로 사세가 전과는 아주 다르니, 사리상 특별히 구휼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상납하는 각종 미포(米布)와 영암의 미수된 쌀과 패선(敗船)된 쌀 등에 대해서는 해조로 하여금 복계하여 시행하게 해야 합니다. 별도로 마련한 단자(單子)를 도로 올려서 성상의 재결에 대비합니다.”하니, 상이 따랐다.【원전】 34 집 262 면

7월 15일(김반을 사간, 이성신을 수찬에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사간으로, 이성신(李省身)을 수찬으로 삼았다.【원전】 34 집 279 면

8월 6일(이목을 이조 참의, 윤황을 사간, 김반을 부응교에 제수하다)
~ 윤황(尹煌)을 사간으로, 김반(金槃)을 부응교로 삼았다.【원전】 34 집 282 면

9월 20일(김반·홍명구·오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집의로, 홍명구(洪命耉)를 부교리로~【원전】 34 집 291 면

11월 20일(김반이 청탁을, 최혜길이 소대의 문제를 아뢰다)
상이 소대(召對)를 명하였다. 《서전(書傳)》의 순전편을 강하였는데 강을 마치고 나서 시강관 김반(金槃)이 나아가서 아뢰기를,“요즘 뇌물로 청탁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신이 전에 헌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 폐단을 익히 압니다. 범법자가 있으면 그에 따른 사사로운 청탁이 계속되기 때문에 봐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위에서 금법을 엄하게 신칙한 뒤에야 조금은 징계되어 두려워할 것입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적임자를 얻는 데 달려 있다. 적임자를 얻으면 청탁은 자연 없어질 것인데 괴롭게 신칙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칙하는 것은 말단의 방도이다.”하고, 이어 탄식하기를,
“우리 나라의 기강이 해이한 것은 모두가 청탁이 성행하기 때문이다.”하였다.
김반이 아뢰기를,“청탁은 이미 고질적인 폐습이 되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위에서 엄금하면 전처럼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집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법관에게도 뇌물로 청탁하는 일이 있는가?”
하였다. 김반이 아뢰기를,“친구나 어른, 아랫사람들이 분분하게 와서 청탁합니다. 심한 경우는 금법을 범하기 전에 미리 단속하지 말라는 뜻으로 행하(行下)를 바치겠다고 청하는 자까지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이른바 단속하지 말라는 말은 매우 놀랍고 해괴한 말이다.”
하였다.【원전】 34 집 306 면

인조8년(1630)4월 24일(김반을 전한으로, 채유후 민응형을 교리로, 김세렴을 헌납으로 삼다)
김반(金槃)을 전한(典翰)으로~【원전】 34 집 374 면



인조9년(1631)5월 11일(김수현·김세렴·민광훈·김반·김남중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응교로, 김남중(金南重)을 교리로 삼았다.【원전】 34 집 429 면



5월 16일(이명한을 대사간으로, 김반을 집의로 삼다)
이명한(李明漢)을 대사간으로, 김반(金槃)을 집의로 삼았다.【원전】 34 집 429 면

7월 11일(집의 김반 등이 훈련 도감 봉족·둔전·무역 금단을 논하며 피혐하다 )
집의 김반(金槃) 등이 와서 피혐하며 아뢰기를,
“신들이 이미 단서를 꺼낸 이상 그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으면 합니다만, 우선 윤허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도감 군액(軍額)의 원수(元數)가 거의 4천 명에 달하는데, 세 사람의 보인(保人)을 갖춘 자도 있고 두 사람의 보인이 있는 자도 있으며 보인이 없는 자도 있습니다. 그 중에 보인을 가진 채 죽은 자도 한량이 없는데, 일단 호수(戶首)가 없게 되면 별도의 책에 기록을 하니 그 이름을 수외 봉족(數外奉足)이라고 합니다. 이는 곧 도감에서 쓰는 문서입니다. 정묘호란 때에 도감의 포수(砲手)로서 서쪽 변경에서 죽은 자가 무려 1백여 명이나 되어 그 때의 수외 봉족이 가장 많았는데, 낭청으로 있는 자가 사적으로 1천 수백 명을 조사해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8백∼9백 명이 되었는데 지금은 몇백 명이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밖에 또 이른바 별초(別抄)라는 것이 있는데 이름을 붙인 뜻은 조금 다르지만 군포(軍布)를 징수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 두가지를 가지고 주현(州縣)에 독촉하면서 군포를 받아들이는 숫자가 몇백 동(同)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고 보면, 간혹 옮겨서 충급(充給)하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당초 보인을 설치한 뜻이 어찌 결단코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원근의 양민을 불러 모아 원전(原田)의 결수(結數)를 감손(?損)해 줌으로써 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의 소굴이 되게 한 것은 각 아문의 둔전(屯田) 때문입니다. 성화(星火)보다 급하게 가렴 주구하며 조그만 이익도 경쟁적으로 다투어 바다에 싣고 가는 재물이 끊이지 않게 된 것은 각 아문의 무판(貿販) 때문입니다. 경외(京外) 백성들이 파산 지경에 이르러 땅과 집을 팔고서 길에서 울부짖으며 원망하는 것은 각 아문에서 징수하는 빚 때문입니다. 백금(白金)을 건네 받고 중국에 가 비단을 싸가지고 와서 감옥에 수감되어 가슴을 치며 원한을 품는 것은 북경에 간 원역(員役)들이 여러 곳에서 침탈을 당하기 때문입니다.이 몇 가지의 폐단이 가깝게는 서울로부터 멀리는 먼 지방에 이르기까지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전하에게 원망을 돌리게 하고 있습니다. 신등은 사람들이 전하를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는 마치 남들이 부모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은 것과 같았습니다. 이에 이미 들은 것을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가 이익되고 백성이 원망을 누그러뜨리게 되기를 바랐던 것인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당치도 않은 말씀으로 그런 마음을 의심하고 계시니, 무슨 낯으로 다시 깨끗한 조정에 설 수 있겠습니까. 파척(罷斥)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김반 등이 끝내 전의 일을 이어 아뢰었으나, 상은 다만 무역을 금단하자는 논만을 따르고 나머지는 모두 듣지 않았다.【원전】 34 집 437 면

7월 21일(홍반을 대사간으로, 김반을 사간으로, 이경인을 헌납으로 삼다)
~ 김반(金槃)을 사간으로, 이경인(李景仁)을 헌납으로 삼았다.【원전】 34 집 438 면

인조11년(1633) 10월 16일(김광현을 대사헌으로, 김반을 사간으로 삼다)
김광현(金光炫)을 대사헌으로, 김반(金槃)을 사간으로 삼았다.【원전】 34 집 534 면

인조12년(1634) 7월 27일(이경여·김반·이식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경여(李敬輿)를 이조 참의로, 김반(金槃)을 부응교로~  【원전】 34 집 557 면



8월 2일(김반 등이 양사와 똑같이 벌 받기를 청하다)
응교 김반(金槃), 교리 강대수(姜大遂)·이원진(李元鎭), 수찬 이시해(李時楷)·김수익(金壽翼) 등이 상소하여 양사와 똑같이 벌받기를 청하니, 답하였다.“소를 보고 잘 알았다. 그대들은 사피하지 말라.”
【원전】 34 집 560 면

12월 1일(김반을 응교로, 이경의를 홍주 목사로 삼다)
김반(金槃)을 응교로, 이경의(李景義)를 홍주 목사(洪州牧使)로 삼았다~【원전】 34 집 579 면

인조13년(1635) 5월 21일(김반·이식·김신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동부승지로~【원전】 34 집 599 면



8월 25일(김반·강대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대사간으로 ~【원전】 34 집 610 면



인조14년(1636)3월 22일(신경진·이성구·김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간으로~ 【원전】 34 집 629 면



9월 17일(김반·민광훈·이상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부제학으로~ 【원전】 34 집 648 면

11월 13일(이경석·이민구·김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간으로~ 【원전】 34 집 653 면



12월 4일(대사간 김반이 사신을 출발시킨 일로 자신의 파직을 주청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대사간 김반(金槃)이 아뢰기를,
“대론(臺論)이 정지되기도 전에 신사(信使)를 서둘러 출발시켰으니, 이는 묘당이 방약무인하게 대각을 대한 것인데, 성명(聖明)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시니 이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고, 정원이 계청한 일도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이 어찌 공의(公議)를 돌아보지 않고 태연히 명을 받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을 파직하소서.”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원전】 34 집 656 면

12월 22일(삼사가 주화자를 참할 것을 청하려다 대사간 김반 등에 의해 그만두다)
삼사가 한 자리에 모여 주화(主和)한 사람을 참할 것을 청하려 하였는데, 교리 윤집(尹集)이 논의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대사간 김반(金槃)과 집의 채유후(蔡裕後)가 너무 지나치다고 하며 힘써 만류하여 그만두었다.【원전】 34 집 659 면

인조15년(1637)1월 9일(대사간 김반과 집의 채유후 등이 청대하고 사신파견의 불가함을 진달하다)
대사간 김반(金槃), 집의 채유후(蔡裕後), 교리 김익희(金益熙)가 청대하여 각기 사신을 파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진달하였다.
~ 김반이 아뢰기를,“보내자고 하는 사람은 한두 명의 대신에 불과하고 또 나머지는 모두들 불가하다고 말합니다. 지난번 북문(北門)에서 조금 꺾인 뒤로 저들의 기세가 한창 교만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신이 잇따라 왕래하였는데, 당시의 문자(文字)는 곧 항서(降書)였지 화서(和書)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강해진 뒤에야 화친도 성립될 것입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어느 때나 스스로 강해지겠는가.”
하였다. 김반이 아뢰기를,“이의배(李義培)는 머뭇거리며 진격하지 않았고, 이시방(李時昉)은 김준룡(金俊龍)을 구원하지 않아 광교(光敎)에서 패배를 당하게 하였으니, 모두 분통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두 사람을 처벌하여 군율을 밝히소서.”하니, 상이 이르기를,“명령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원전】 34 집 664 면



윤 4월 6일(김반·서경우·정태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대사성으로 ~ 【원전】 34 집 685 면



5월 8일(윤지·서경우·김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성으로 ~ 【원전】 34 집 688 면



9월 3일(이홍주·심동귀·김휼·김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부제학으로 삼았다.【원전】 34 집 702 면



10월 15일(김수현·김반·유경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간으로 ~ 【원전】 34 집 706 면



11월 7일(신경진·김반·서경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성으로~【원전】 34 집 709 면

인조16년(1638)1월 16일(김반·임담·유영·남노성·김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행 이조 참의로~【원전】 35 집 3 면

8월 3일(김반·최계훈·박수문·유철·정지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대사헌으로~【원전】 35 집 31 면



8월 5일(대사헌 김반이 김상헌에 관한 의논을 정지시키고 유석·박계영의 파직을 계하다)
대사헌 김반(金槃)이 김상헌에 관한 의논을 정지시키고, 인하여 아뢰기를,
“국가가 망극한 변을 당했을 때에 종사의 대계를 위하여 부득불 권도를 사용해 화(禍)를 덜어야 하겠지만 참으로 한 낱의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정도(正道)를 지키자는 의논이 없다면 동방예의지국이란 호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김상헌은 천지가 변역(變易)할 때를 당하여 임금이 치욕당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사수해야 한다는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 의논이 시행되지 않자 죽으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이미 성상을 영영 이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성상께서 궁궐로 돌아온 뒤에도 성상을 뵙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의 소견은 비록 꽉 막혔으나 그의 정상은 애처로운데 어떻게 탈을 잡아 죄를 줄 수 있겠습니까.
유석(柳碩)과 박계영(朴啓榮) 등이 공론을 무시하고 홀로 사사로운 소견을 주장하여 극심한 죄로 얽어 반드시 중벌에 처하려고 하니, 기회를 틈타 원한을 보복한다는 꾸짖음은 모면하기 어려운 바가 있습니다. 더구나 더러운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은 실로 상헌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감히 글에 쓰지 못하는 바인데, 유석 등이 죄로 얽어매기에 급급하여 스스로 이 말을 만들어 억지로 남에게 덮어 씌우면서 조금도 꺼려하지 않으니, 아, 이 무슨 마음입니까. 소행이 좋지 못하여 물정이 몹시 놀라니, 여러 날 그대로 그 직책을 지니게 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파직을 명하소서.”하니, 답하기를,“대신의 차자를 인하여 이미 체차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하였다.【원전】 35 집 32 면

10월 11일(오단·권도·김반·최혜길·서상리·구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헌으로, 최혜길(崔惠吉)을 대사간으로~ 【원전】 35 집 37 면

10월 18일(대사헌 김반이 김상헌의 일에 대해 계하다)
대사헌 김반(金槃)이 아뢰기를,
“임금에게 고하는 말은 터럭만큼도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당초 내려보내지도 않은 교지를 봉한 채 돌려보냈다고 하여 불경(不敬)이라는 죄로 애매하게 남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정온이 소신껏 행동한 것은 성상께서도 인정한 바입니다. 누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명예를 구하려는 뜻을 낸다고 말하겠습니까. 포위된 성에 호종(扈從)하고 들어갔다가 변고가 안정되자 비로소 돌아갔는데, 임금을 생각한 뜻이 없다고 하여 죄를 주려고 하니, 신은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의견이 같지 않으니, 결코 장관 지위에 그대로 있기 어렵습니다. 신을 파직시키소서.”하였다. 집의 권도는 소견이 김반과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인피하고, 정언 박수문과 대사간 최혜길은 김반과 권도를 처치할 때에 논의가 모순되었다는 이유로 아울러 인피하였다. 홍문관이 차자를 올려 김반과 권도는 출사시키고 박수문과 최혜길은 체차시키기를 청하니, 상이 따랐다.【원전】 35 집 38 면



11월 1일(조창원·최씨·이성구·남이웅·김반·이계·신유·박수문·정지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반(金槃)을 대사간으로~ 【원전】 35 집 39 면

11월 21일(김반·김세렴·최계훈·이운재·권임중·정치화·정지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이조 참판으로~ 【원전】 35 집 41 면

인조17년(1639)4월 4일(~김반·김집·남노성·김익희·유심·신익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부제학으로, 김집(金集)을 집의로, 남노성(南老星)을 교리로, 김익희(金益熙)를 부교리로~【원전】 35 집 54 면

12월 14일(김반·민응협·윤득열·이수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대사헌으로~ 【원전】 35 집 7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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