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공(諱 繼輝) 관리능력 평가 기록(선조실록 6년 10월 1일)

황강 김계휘의 사당 (모선재)  전 참의 김계휘(金繼輝)를 가선(嘉善)으로 품계를 올려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 영남은 땅이 크고 사람이 많아 문서가 계속 답지하였는데, 김계휘(金繼輝)는 입으로는 수답하고 손으로는 쓰면서 일을 물 흐르듯 처결하였으므로, 말하는 자들이 그를 남조(南朝) 송(宋)의 유목지(劉穆之)에 견주었다. 처음 경상도에 이르렀을 때 아전(실무단당 관리)이 열읍(列邑)의 군부(軍簿)를 올리니 김계휘(金繼輝)는 한 번 열람하고 치웠다. 얼마 후에 아전이 한 고을의 장부를 잃어버려 그 고을에 있는 장부를 다시 올리게 하자, 김계휘(金繼輝)는 서슴지 않고 아전에게 붓을 잡으라고 명하고서 그 장부를 입으로 부르는데 한 글자도 착오가 없었다.

  백성이 소첩(訴牒)⑷을 올린 날짜와 이름자를 모두 암기하고 있었으므로, 나중에 그것을 다시 올린 자가 있으면 출두시켜 꾸짖기를, ‘너는 몇 월 며칠에 이 장소(狀訴)를 올렸는데 이제 어찌 재차 올렸느냐’하였다. 민간에서는 그 말을 듣고 관찰사는 신명(神明)하여 속일 수 없다고들 하였다. 그리하여 동헌 뜰에는 미결된 백성이 없고 탁자 위에는 적체된 문서가 없어 치적(治績)이 여러 도(道) 중에 으뜸이었다.

註)
⑴ 가선(嘉善):가선대부(嘉善大夫)의 줄인 글로 종2품 벼슬
⑵ 유목지(劉穆之):남송시대 지방장관으로 탁월한 업무능력과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대단하여 후대 지방관리의 표본이 된 유명한 관리
⑶ 군부(軍簿):요즘의 입영대상자 및 예비군 명단
⑷ 소첩(訴牒)·장소(狀訴):청원이나 소송할 것이 있을 때 관청에 내는 서류

예조참판(禮曹參判) 김계휘(金繼輝) 졸기(卒記)(선조실록 15년 4월 1일)

  예조참판 김계휘(金繼輝)가 졸(卒)하였다. 김계휘(金繼輝)는 타고난 자품이 영특하고 마음가짐이 화평하였으며 세세한 행동과 예절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먼저 원대한 포부를 지녔기 때문에 수련을 쌓은 공부(道學)는 없었으나 소견이 고매하여 은연중 도리에 합치되었다.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전고(典故)에 숙달하였으며 인물을 알아보는데 밝았고 정사(政事)를 처리하는데 민첩하여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재주를 지녔으므로 당시 명현(名賢)들이 모두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인정하였고 당대 사람들도 공보(公輔)⑶로 삼을 만한 재기(才器)라고 칭송하였다.

  가정생활이 청렴하고 검소하였으며 30년 동안 현직(顯職)에 있었으나 문정(門庭:집안살림)이 포의(布衣)시절과 같았다. 젊었을 때부터 문명(文名)으로 출신하였는데 권간(權奸:윤형원 일파)이 득세하던 때를 당하여 한번도 자신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십 수년 동안 폐척(廢斥)되었었다.

  상(上:선조임금)이 즉위한 처음에 제일 먼저 발탁되었는데 논의가 적절하였으므로 조정이 추중하였고 상(上)도 특별히 총애하였다. 마침 사론이 분열되었을 때를 당하여 그들에게 동조하거나 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대관(臺館)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국론이 애석하게 여겼다. 이때에 이르러 특진관으로 주강(晝講)에 입시하였다가 갑자기 중풍(中風)으로 쓰러져 사람들에게 들려 집으로 돌아와 그 길로 일어나지 못했는데, 상(上:선조임금)이 무척 애도하였고 특별히 관곽(棺槨)을 하사하여 장사지내게 하였다.

  김계휘(金繼輝)는 색목(色目:당파)으로 공척을 받았지만 그의 청렴 검소하고 관후한 덕에 사람들이 심복하였기 때문에 소인들도 감시 몹시 노하거나 헐뜯지 못하였다. 그리고 넓은 학식과 뛰어난 기억력으로 귀신처럼 잘 알아내는데는 국조(國朝:조정)에 제일인자로 추대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아들 장생(長生)은 뒤를 이어 유학(儒學)으로 세상에 명성을 드러내었다.

註)
⑴ 전고(典故):전례(典例)와 고사(故事)
⑵ 경국제세(經國濟世):나라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함
⑶ 공보(公輔):임금을 보필하며 정사를 다루는 대신
⑷ 포의(布衣):벼슬이 없는 선비를 이르는 말
⑸ 폐척(廢斥):내 쫓기다.
⑹ 대관(臺館):정승급 반열의 벼슬
⑺ 주강(晝講):임금이 신하들과 같이 하루 3번의 공부를 하는데 그 중 낮 시간에 해당하며,  그 외 아침시간의 조강(朝講), 저녁시간의 석강(夕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