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재(愼獨齋) 사상(思想)에 있어서의 통치륜리(統治倫理)

尹用男(成均館大 講師)


目 次




一. 序言

二. 性理學에 있어서의 人間理解

三. 愼獨齋 思想에 있어서의 統治者의 職分

四. 愼獨齋 思想에 있어서의 統治倫理

五. 結語

一. 序言

儒家는 宇宙 全體를 하나의 有機體로 보고, 宇宙 내에 존재하는 萬物이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함으로써 宇宙가 存立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사람은 물론 다른 萬物도 각자 맡은 役割이 있고, 그 맡은 役割을 성실히 수행하므로써 宇宙는 秩序와 調和를 이루면서 存立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전체는 그들의 力量에 맞게 주어진 役割이 있고, 사람들은 또 이 사람 전체가 가지는 役割을 서로 분담하여 실행함으로써 인류사회의 秩序와 調和를 가져오고, 나아가 宇宙 全體의 秩序와 調和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役割分擔을 위주로 보는 宇宙觀·人間觀은 나아가 職業觀에 있어서도 役割 分擔을 위주로 한다. 즉 사람들이 서로 분담하여 맡은 役割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며,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만 그 개인은 인류사회 및 宇宙 안에서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분담한 역할의 성실한 수행은 각자의 의무인 동시에 자신이 존재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인류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집단 중에서 보다 組織的이고 體系的인 집단은 국가이다. 국가는 인간이 구성한 집단 중에서 가장 강력한 拘束力을 가진 조직체로서 사람들은 국가를 단위로 하여 살아가며, 국가 안에서 역할 분담에 따른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 이 국가로 하여금 보다 완벽한 조직체가 되게 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협동 단결하여 맡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바로 국가의 統治者이다.

위와 같은 宇宙觀, 人間觀, 職業觀을 채택한 朝鮮時代는 儒家思想이 가장 잘 적용되었던 사회였으며, 愼獨齋(姓:金, 名:集, 字:士剛, 愼獨齋는 號임, 1574∼1656)가 살았던 16∼17世紀는 儒家的 國家 理念이 정착하였던 사회이다. 다만 光海君의 失政과 仁祖反正 등으로 인하여 국가의 기강이 解弛해졌으므로 統治者인 임금의 역할이 보다 중시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에 愼獨齋는 당시 士林의 宗長으로서 위로는 임금과 아래로는 여러 官員과 百姓들의 두터운 信望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愼獨齋는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父親인 沙溪 金長生을 모시고 학문에 전념한 학자였다. 평생동안 학문에 전념한 愼獨齋가 임금에게 올리는 上疏文과 行動擧止는 하나하나가 時代의 敎訓이 되는 것이었다.

이에 論者는 愼獨齋가 의거한 性理學의 입장에서 人間觀을 고찰하고, 그에 바탕하여 愼獨齋가 上疏文 등을 통해 제시한 統治者인 임금이 가지는 職分과 그 倫理를 밝혀 보고자 한다. 즉 論者는 性理學의 役割 分擔論이 어떤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먼저 해명하고, 나아가 그러한 맥락에서 愼獨齋가 제시한 統治者인 임금이 지켜야 할 倫理 規範이 무엇인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二. 性理學에 있어서의 人間理解

性理學에 있어서의 역할 분담은 인간사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宇宙 안에 있는 萬物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人物性同異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宇宙 안에서 가지는 인간의 역할을 먼저 고찰하고자 한다.

子思는 中庸 首章에서 만물이 가지는 역할분담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天이 명령한 것을 性이라 하고, 性대로 하는 것을 道라 한다.

만물이 가지는 역할은 先天的으로 규정된 것이다. 즉 天이 만물의 靈長인 인간은 물론 하찮은 微物에게도 性을 부여하였다는 것은 만물은 모두 天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性은 本質的으로 동일하다. 즉 天이 각 만물에 임무를 부여할 때는 하나의 동일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자에게 역할을 분담시킨 것이므로 그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과 만물이 각자 자연스런 性대로 하면 日用 사물 사이에 각각 마땅히 가야할 길이 아닌 것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道이다.

만물이 각자 先天的으로 받아 가지고 태어난 性이 있는데, 이 性이 그들의 의무이며, 이것이 바로 道이다. 즉 만물은 性대로 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의 본질은 비록 모두 같은 것이지만 그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天은 어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두에게 동일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임무를 부여한다. 이러한 이유로 만물은 서로 다른 形狀을 하게 된다. 이를 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天道가 流行하여 만물을 發育하는데, 造化를 이루는 것은 陰陽五行뿐이다. 이른바 陰陽五行은 또 반드시 이 理가 있은 후에 이 氣가 있다. 만물을 生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또 반드시 이 氣가 모인 후에 이 形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의 生은 반드시 이 理를 얻은 연후에 健順과 仁義禮智의 性이 있을 수 있으며, 반드시 이 氣를 얻은 연후에 魂魄과 五臟百骸의 몸이 있을 수 있다. 周子가 말한 '無極의 眞과 陰陽五行의 精髓가 妙合하여 엉켰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天이 주는 측면에서 말하면 命이고, 만물이 받는 측면에서 말하면 性이다. 이때 주는 자인 天도 氣가 있고 받는 자인 만물도 氣가 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氣가 있으므로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理는 동일할 수 있지만 氣는 동일하지 않고 많은 차별상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理를 동일하게 부여하지 못하고 氣에 따라 각기 다른 임무를 부여하게 된다. 즉 氣의 각기 다른 특성에 따라 다른 性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받아 가진 性은 서로 다르다. 즉 만물의 性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고,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 朱子는 이를 요약하여

만물이 一源인 것을 논하면 理는 같고 氣는 다르다.

라고 한다. 理가 같다는 것은 만물의 性이 天을 體로 하여 나왔다는 것으로서 一源體用의 一體多用을 말하는 것이다. 氣가 다르다는 것은 氣의 다른 특성에 따라 그에게 부여한 性도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컨대 위에서는 一源體用 중의 先體後用의 측면에서 天이 體가 되고 만물의 性이 用이 됨을 말한 것이다. 또한 一源體用은 一體多用이 가능하므로 理同性異를 말할 수 있다. 理가 같은 실상은 天은 만물을 生生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자이므로 體와 用의 同質性, 즉 理와 性의 同質性은 만물의 生生과 愛物에 있다. 즉 만물이 각기 다른 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他者를 生生하고 사랑한다는 동질성을 가진다. 그 生生과 愛物의 측면을 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性이 다른 실상은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를 말한다. 즉 氣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은 각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이를 無間體用의 측면에서 관찰하면 다음과 같다. 朱子는 사람과 만물의 외형적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예를 들어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은 天을 象한 것이며, 발이 네모진 것은 地를 象한 것이다. 균형을 잡고 곧게 서서 天地의 正氣를 받은 것이 道理를 알고 지식을 가지는 理由이다. 만물은 天地의 偏氣를 받았다. 禽獸는 옆으로 자라고, 草木은 머리로 자라면서 아래를 향하고 꼬리는 도리어 위를 향하는 이유이다. 만물 중에 지식이 있는 자는 오직 한 길을 통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까마귀는 孝를 알고, 물개는 祭祀를 알며, 개는 단지 盜賊을 지킬 수 있으며, 소는 단지 밭을 갈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사람이 만물과 차이를 다투는 것은 이것뿐이다.

사람의 모양은 머리는 둥글고 발은 평평하여 위로는 바른 天氣를 받고 아래로는 바른 地氣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으나, 동물은 直立하지 못하고 기어 다니며, 草木은 거꾸로 서서 뿌리를 땅 속에 박고 있다. 모양이 이러하므로 그 받은 氣가 正·通하지 못하고 偏·塞하다. 그러므로 天으로부터 받은 理도 그에 따라 偏全通塞의 차이가 있다. 다만 氣의 측면에서 보면 같은 天地의 氣를 받았으므로 오히려 각자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는 같다. 그러나 그들이 他者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를 朱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살피건대 性은 사람이 天에서 받은 理이며, 生은 사람이 天에서 받은 氣이다. 性은 形而上者이고, 氣는 形而下者이다. 사람과 만물의 生은 이 性을 갖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이 氣를 갖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氣로써 말하면 知覺과 運動은 사람과 만물이 다르지 않은 것 같으나, 理로써 말하면 만물이 받은 仁義禮智가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사람의 性이 善하지 않음이 없어서 만물의 靈長이 되는 이유이다.

만물은 天으로부터 理와 氣를 얻었으니, 性은 理이고 氣는 形體이다. 性은 骨子이고 形體는 體質이다. 體質이 이러하므로 그 속에 담고 있는 骨子도 또한 그와 일치한다. 즉 그들의 形體에 따라 각기 다른 骨子, 즉 다른 性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性은 하나의 근원인 天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다. 즉 만물 속에 性으로 들어 있는 측면에서 보면 서로 다르나 一源體用의 一體多用을 用의 측면에서부터 體를 추구하여 보면 궁극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이는 氣도 마찬가지이다. 즉 만물에 분산되어 있는 측면에서 보면 각 만물의 氣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역시 一體多用의 體를 추구하여 보면 하나의 근원이므로 결국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에서는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성질 즉, 好生惡死하고 趨利避害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보면 氣의 공통적 특징은 자신의 형체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며, 理의 공통적 특징은 他者의 生生을 돕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形氣를 보존코자 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이며, 他者의 生生을 돕고자 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런데 만물은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때 인간은 가장 天地와 닮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받은 性도 天地와 닮았다. 그러므로 까마귀는 孝行만을 할 수 있으며, 개는 도둑을 지킬 수 있고, 소는 밭을 갈 수 있으나,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이를 朱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한다.

만물의 몸이 다른 것을 보면 氣는 오히려 비슷하나 理는 절대로 같지 않다. 氣가 다른 것은 純粹와 駁雜의 차이이며, 理가 다른 것은 혹 偏과 全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물의 形狀은 다르나 그 형상을 이루고 있는 氣는 결국 동질적인 것이므로 서로 유사하다. 즉 好生惡死하고 趨利避害하는 生에의 욕구를 가진다. 그러나 각기 다른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맡은 역할은 서로 크게 다르다. 한편으로는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그 역할이 他者의 生을 돕는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또한 동질적이다. 만물의 性은 다르지만 그것이 모두 天理의 流行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요약컨대 一源體用의 측면에서 보면 만물의 궁극적인 體인 天은 하나이므로 그 體가 流行한 만물도 역시 모두 天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天은 理와 氣가 合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가 流行한 用으로서의 만물도 理와 氣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天의 理는 만물을 生生하는 것이므로 그 理를 받은 만물의 理도 그와 같다. 또 天의 氣는 天의 體質로서 天 자신의 自己保存을 추구하는 특성을 가지므로 그 氣를 받은 만물의 氣도 그와 같다. 한편 天의 理와 氣는 본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이 流行할 때는 그 理에 따라 그 理에 맞는 氣가 함께 流行하므로 만물은 역시 많은 다양성을 가진다. 결국 만물의 理인 性과 氣인 形體는 서로 同質性과 差別性을 동시에 가진다.

한편 無間體用의 측면에서 보면 만물의 형상이 다양한 것은 그 體質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體質이 다양함은 또한 그 骨子의 다양함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萬物上 無間體用으로 확대하여 보면 만물의 공통적인 骨子는 天理이니, 결국 만물은 동일한 理를 갖는 것이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氣도 또한 동질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理는 만물을 통합하고 화합케하는 것이므로 性을 말할 때는 同質性이 강조되고 氣를 말할 때는 差別性이 강조된다. 한편 一源體用의 측면에서 말하면 性이 다르므로 氣가 다르다고 할 수 있고, 無間體用의 측면에서 말하면 氣가 다르므로 性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는 사람과 만물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개괄적으로 고찰하였다.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만물의 역할과 그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특수한 지위를 고찰코자 한다.

그 理로써 말하면 만물은 一原이니 진실로 사람과 만물에 貴賤의 차이는 없다. 그 氣로써 말하면 正하고 通한 氣를 받은 자는 사람이 되고, 偏하고 塞한 氣를 받은 자는 만물이 된다. 그러므로 혹은 貴하고 혹은 賤하여 똑같지 않다. 저 賤하여 만물이 된 자는 이미 偏塞한 形氣에 갇혀 있어서 완전한 本體를 채울 수 없다. 오직 사람의 生은 바로 正하고 通한 氣를 받아 그 性이 가장 貴하다. 그러므로 그 心이 虛靈하고 洞澈하며 萬理를 모두 갖추었다. 대개 禽獸와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 堯舜 같이 되어 天地에 참여하여 만물의 化育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역시 이를 벗어 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明德이다.

만물이 모두 他者의 生生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람과 다른 만물은 貴賤이 없다. 그러나 그 받은 氣의 차별상으로 인하여 그들이 가지는 역량의 차이를 보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즉 인간의 형상은 天地의 형상을 닮았으므로 만물 중에 가장 뛰어난 氣를 받을 수 있었고, 따라서 그 天地의 理를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즉 사람의 氣는 가장 고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였고, 따라서 天은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 임무란 바로 天地를 도와 만물의 化育을 돕는 것이다. 朱子는 이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한다.

天地의 化育을 돕는다. 사람이 天地의 중간에 있어서는 비록 다만 하나의 理이지만 天과 사람이 하는 일에는 각자 分別이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天은 도리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天은 만물을 生할 수 있으나 밭을 가는 데는 반드시 사람을 쓰고, 물은 만물을 윤택하게 할 수 있으나 물을 대는 데는 반드시 사람을 쓰며, 불은 만물을 구울 수 있으나 불을 때는 데는 반드시 사람을 쓴다. 지나친 것을 마름질하여 성취하고 부족한 것을 돕는 것은 반드시 사람이 하는 것이니, 돕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天地는 만물을 化育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天地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씨앗을 흙으로 덮어 주어 싹이 트게 하는 일이나 식물에 물을 대주는 일 등을 天地는 할 수 없으나 사람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히려 天地가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사람이 天地의 化育하는 일을 돕는 것이다. 나아가 사람은 天地의 仁義禮智를 모두 받았고, 그를 모두 발현시킬 능력을 겸비하였으므로 天을 대신하여 宇宙萬物을 통치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에 대하여 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敎化는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람은 天地의 心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만물을 敎化하여 더불어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임무를 가졌다. 宇宙 안에 존재하는 만물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다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권리를 갖는다. 이 만물들을 교화하여 먼저 자기의 역할을 다한 다음 자신의 권리를 享有하도록 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신의 권리를 앞세우기 이전에 먼저 率先垂範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만물은 스스로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만물은 각자 그들의 역량, 즉 氣의 偏全通塞에 따라 역할을 할당받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만 자신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할이 바로 만물이 가지는 職分이다. 여기서 사람이 만물과 분담한 역할은 바로 宇宙의 정신으로서 宇宙의 질서와 조화를 지켜야 하는 일이다. 즉 사람은 宇宙의 통치자이며 宇宙의 사령관이다. 이것이 사람이 宇宙 안에서 가지는 職分이다.

생각컨대 만물은 본래 자기의 역량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였으므로 역할의 성실한 이행은 바로 自我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이 生存할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他者의 임무 수행에 의하여 보장된다. 나아가 자신의 生存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生存하지 않으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임무 수행에 의하여 生存을 보장받게 되는 他者의 生存도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宇宙 안에 있는 만물은 의무와 권리의 연쇄로 맞물려 있는 하나의 有機體이다. 그러한 속에서 사람은 宇宙의 大腦로서 사람의 心이 肉身을 지휘하고 통제하여 肉身을 유지하여 가듯이, 사람은 그 肉身인 宇宙만물을 지휘하고 통제하여 유지해 가야 하는 責務가 있다.

三. 愼獨齋 思想에 있어서의 統治者의 職分

宇宙 안에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임무는 宇宙의 정신으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나 사람은 대개 같은 形狀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분석하여 보면 그 器量이 千差萬別이다. 사람이 모두 같은 性(임무)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측면은 本然之性을 가지고 말한 것이며, 그 器量이 千差萬別하다는 것은 氣質之性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즉 氣質之性은 本然之性 안에서 다시 나누어지는 차별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朱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通한 것에도 혹 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그 正한 것에도 美惡의 다름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稟賦받은 材質이 淸한 자는 지혜롭고 濁한 자는 우둔하며, 美한 자는 어질고 粗惡한 자는 不肖하다. 또 같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上智와 大賢의 資稟이라야 비로소 능히 그 本體를 완전하게 할 수 있어서 조금도 밝지 않은 것이 없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소위 明德이 이미 가리워져서 그 온전함을 잃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氣質의 가리워짐이 있는 心으로 무궁한 사물의 변화에 접하면 눈이 색을 좋아 하고자 하는 것과 귀가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과 입이 맛보고자 하는 것과 코가 냄새 맡고자 하는 것과 四肢가 편안하고자 하는 것이 그 德을 해치는 것을 또한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氣는 다른 만물에 비하면 正全하고 通透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또 많은 차이가 있다. 혹은 淸粹하고 혹은 濁駁하다. 淸粹한 氣를 받은 사람은 지혜롭고 어질며, 濁駁한 氣를 받은 사람은 어리석고 모질다. 이 중에서 가장 淸粹한 氣를 받은 자는 聖人이 되고, 그 다음은 賢人이 된다. 聖人은 天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모두 완전하게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또한 모든 사람을 잘 敎化시켜 사람이 가진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사람 중에 그러한 임무를 가진 자는 바로 임금이다. 朱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개 天이 生民을 낸 이래로 이미 仁義禮智의 性을 주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받은 氣質이 혹 똑 같지 않으므로 性이 있는 것을 알아서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한번 聰明하고 叡智가 있어서 그 性을 다할 수 있는 자가 그 중에서 나오면 天은 반드시 任命하여 만백성의 임금과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가르쳐서 그 性을 회복하게 한다. 이것이 伏羲, 神農, 皇帝, 堯, 舜이 天을 계승하여 皇極을 세워 司徒의 벼슬과 典樂의 官職을 설립한 까닭이다.

正通한 氣를 받아 사람이 된 자 중에 특히 淸粹한 氣를 받은 聖人은 그 天의 분부를 잘 이행할 줄 안다. 그러므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임금으로 뽑아 그로부터 배우고 지시를 받아 힘을 합쳐 사람이 해야할 職分을 완수한다. 따라서 임금으로 뽑힌 聖人은 그 백성을 敎化하고 善導할 책무가 있다. 이때 임금은 각 백성의 器量을 헤아려 각자가 맡을 직분을 부여하고, 또 그들이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생각컨대 儒家에서 임금을 뽑는 방법은 德望과 智慧가 있는 자를 백성들이 스스로 推戴하는 것이다. 다만 禹이후로 長子相續이 제도화되어 덕망과 지혜가 있는 자가 임금이 되지 못한 것은 큰 불행이다. 그러나 임금은 덕망과 지혜를 갖추고 백성의 추대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즉 長子로서 왕위를 계승하였더라도 위의 원칙에 의하여 임금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推戴 節次는 변질되었으나 그 정신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원칙과 제도 속에서 愼獨齋는 統治者인 임금의 職分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임금은 한 몸에 宗社와 백성의 依託을 받았으니 기분대로 지나치게 슬퍼하기를 아랫 백성과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위로 宗社를 생각하고 아래로는 慈殿을 위로하며, 休息·保養하고 哀痛함을 절제하여 몸을 보호하여 임금으로서의 大孝를 다해야 합니다.

임금은 국가와 백성을 책임져야 하는 公人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셔서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있더라도 그 슬픔에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 국가와 백성을 책임진 자신의 직분을 생각하여 슬픔을 자제하고 건강을 유지하여 자식으로서의 孝道를 다하기 보다는 임금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큰 효도가 됨을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일반 백성의 효도이며,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백성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나아가 그 영광이 先代 임금에게 돌아 가게 하는 것이 임금의 효도이다. 그러므로 임금은 비록 喪中이라도 政事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부모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자제해야 할 만큼 막중한 임금의 직분은 先代로부터 내려오는 국가의 命脈을 유지하고 국토를 방위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것은 한 나라 백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백성이 살아 가기 위해서는 動物과 植物 등 사람의 생존을 떠받치고 있는 자연 전체의 생존도 함께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임금은 한 국가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 또 나아가서 한 국가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그를 지지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宇宙 전체의 安危도 책임져야 한다. 결국 사람이 宇宙 안에서 宇宙의 정신으로서의 직분을 갖는다면 임금은 백성 전체의 정신으로서 백성을 잘 교화하고 다스려서 사람이 宇宙의 정신으로서의 직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직분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心이 잠시도 쉴 새가 없는 것처럼 백성 전체의 心인 임금도 잠시도 쉴 새가 없는 것이다.

한편 임금이 가지는 肉身의 天君은 心이다. 즉 임금의 心은 그 肉身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愼獨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臣은 임금의 一心은 만 가지 造化의 근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宇宙의 心이고, 임금은 萬百姓의 心이므로 임금의 心은 宇宙의 心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心은 모든 조화의 근원이다. 즉 임금의 心의 號令에 임금이 움직이고, 임금의 號令에 백성이 움직이고, 사람의 號令에 宇宙가 움직인다. 따라서 임금의 號令에 따라 宇宙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임금의 心이 公正하면 임금의 處身과 號令이 公正하고, 임금의 處身과 號令이 公正하면 백성의 處身과 號令이 公正하며, 사람의 處身과 號令이 公正하면 만물과 宇宙가 公正하다.

생각컨대 愼獨齋가 말하는 統治者의 직분은 백성과 만물이 이미 가지고 있는 力量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宇宙 전체가 화합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일이다. 즉 宗社를 좁게 말하면 한 국가에 국한되지만 넓게 말하면 宇宙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가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宇宙 전체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하므로 근본은 한 국가에 있다. 그러므로 임금의 직분은 일차적으로 한 국가를 잘 다스려서 그 국토 안에 있는 백성과 만물이 調和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또한 만물의 調和는 사람이 화합하는 것에 힘입어 달성되는 것이므로 임금의 최우선적인 직분은 그 나라의 백성을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대저 위에서 天命으로부터 人性과 物性을 賦與받은 것과 나아가 人性 중에서 그 자질에 따라 각기 다른 직분을 나누어 맡은 것은 모두 一源體用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임금은 가장 淸粹한 氣를 받은 聖人이므로 그 맡은 직분도 그 氣에 맞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따라서 임금의 心은 가장 궁극적인 體이며 임금의 肉身은 그 體의 지시를 받아 운행하는 用이고, 임금의 一身은 만백성의 體이며 만백성은 임금의 지시를 받아 살아가는 用이다. 나아가 사람은 體이고 다른 만물은 그 지시를 받아 調和를 이루는 用이다. 이들은 體用의 연쇄 속에서 각기 다른 體用으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각자는 자신의 직분에 맡는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

四. 愼獨齋 思想에 있어서의 統治倫理

위에서는 愼獨齋가 말하는 統治者인 임금이 가지는 職分을 고찰하였다. 다음에는 이 統治者가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윤리를 검토하고자 한다. 愼獨齋는 이를 크게 6條로 나누어 말하였는데, 이는 體用理論에 입각하여 제시한 것이다. 이를 먼저 차례대로 알아본 다음 體用理論을 적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德量을 넓힐 것

愼獨齋는 임금이 德量을 넓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德量을 넓히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 되는 것은, 임금의 德量이 넓지 못하면 直言이 귀에 거슬려서 아첨하는 사람이 다가오게 되고, 반듯한 선비는 친하기 어렵고 총애받는 신하가 陞進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족히 임금에게 흠이 되는데, 하물며 작은 것을 크다 하고 적은 것을 보고 많다 하며, 자기의 재능을 과장하고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며,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억눌러서 임금의 權威와 比肩하여 여러 의견이 모이지 못하게 하는 데에 이르러서이겠습니까. 그러므로 '心이 크면 百物이 다 통하고, 心이 작으면 百物이 모두 병든다.'고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절실한 말입니다. 그러나 德量이 크지 못한 것은 비록 氣質이 偏僻된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역시 私意를 이기지 못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개 天과 사람은 하나의 理이므로 다시 분별할 것이 없습니다만 사람은 私意에 가려서 너와 나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天地처럼 클 수 없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힘써 私意을 제거하시고 德量을 넓히시면 宗社가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임금의 德量이 크지 못하면 자기의 비위에 맞는 말은 좋아하고 비위를 거스리는 말은 싫어하게 된다. 비위에 맞는 말이 항상 정당한 것일 수는 없으므로 때로 正道에 어긋나게 된다. 이것은 天理가 막혀 흐르지 못하는 것이므로 병통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병통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의 德量을 넓혀 모든 말을 受納하여 是非를 판단한 다음 바르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대개 德量이 넓지 못한 이유는 첫째 氣質이 편벽하기 때문이며, 둘째 私利私慾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氣質이 편벽한 것은 쉽게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보다 비교적 쉬운 私欲을 제거하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이 방법을 愼獨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개 임금이 의견을 듣는 道理는 오직 마음을 비우고 용납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혹 (자기 의견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응대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조용히 평온을 지켜 和氣를 잃지 말고 결단코 不平을 하지 마셔서 여러 아랫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의 德量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게 하소서.

임금이 신하의 건의를 널리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자기의 마음을 비워 평온한 상태에서 혹 자기와 다른 의견이라도 일단 들어 보고 자세히 是是非非를 가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하들이 임금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 하는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임금이 신하의 말을 듣고 즉각 반응하여 좋아 하고 싫어 하는 감정이 탄로나게 되면 신하들은 直言하기를 꺼린다. 이는 임금의 德量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임금이 가지고 있는 情報가 다양하지 못하면 어떤 판단을 내릴 때 한편으로 치우치게 되며 이는 더욱 자신의 德量을 협소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임금은 반드시 먼저 자신의 德量을 넓혀서 여러 의견을 듣고, 바른 판단과 그에 따른 바른 명령을 하게 되면 점점 여러 의견을 고루 들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德量은 점점 넓어지게 된다.

요약하면 자신의 德量을 넓히는 방법은 첫째는 私欲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며, 둘째는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먼저 내보이지 말고 여러 의견을 고루 듣는 것이다. 결국 사욕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열면, 直言을 많이 들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德量은 점점 더 넓어지게 된다.

둘째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울 것

愼獨齋는 임금이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워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紀綱을 振作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 되는 것은 임금이 一世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紀綱뿐이기 때문입니다. 紀綱이 서면 上下가 서로 통하는 것은 몸이 팔을 부리는 것과 같으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받드는 것은 팔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조리가 있어 문란하지 않습니다. 紀綱이 서지 않으면 모두 이와 반대이니, 마비된 사람의 手足과 머리와 눈이 각자 따로 몸을 삼아 굳게 붙어 있어 우지직거려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 客邪가 들면 곧 죽게 되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紀綱은 自立할 수 없고 반드시 임금이 먼저 그 心을 公正하게 하여 털끝만한 私意도 그 사이에 개입시키지 않은 연후에, 信賞必罰하면 여러 사람이 듣고 의심하지 않으며, 賢人을 쓰고 奸邪한 자를 물리치면 백성이 마음으로 복종하여 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心을 公正하게 쓰셔서 紀綱을 세우시면 宗社가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지 않으면 紀綱이 서지 않아서 윗 사람의 명령이 아래에 전달되지 못하고, 따라서 그 명령이 시행되지 못한다. 이는 心의 명령이 四肢에 전달되지 못하여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때 밖에서 병균이 침투하면 그 사람은 곧 죽게 된다. 국가도 이와 같다. 국가의 紀綱이 서지 않으면 임금의 명령이 아래 官員과 백성에게 전달되지 못하여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이때 外敵이 침입하면 그 국가는 곧 망하게 된다.

대개 국가의 紀綱이 서지 못하는 이유는 임금의 일처리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의 일처리가 공정하면 賞罰이 공정하여 백성이 의심하지 않고, 忠臣을 등용하고 奸臣을 내치게 되므로 백성이 모두 복종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임금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우는 방법을 자세히 논하면 다음과 같다.

①是非를 분명히 할 것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여 紀綱을 세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是是非非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愼獨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是非를 알기는 어려우나 이미 안 후에 더욱 분명히 분별하지 않으면 邪와 正이 어떻게 구분되며 紀綱이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국가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是非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며, 안 다음에는 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是非를 가려 아는 일도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임금이 먼저 이를 알지 못하면 안되며, 나아가 안 대로 明示하여 누구나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알게 해야 한다. 是非가 분명하지 못하면 모든 일이 전도되어 끝내는 나라 꼴이 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임금은 먼저 是非를 가려 알고 그를 분명히 하여 만백성이 따라 올 수 있도록 해야 국가의 紀綱이 선다. 만일 임금이 먼저 是非를 알지 못하고 신하의 판단에만 맡기게 되면 이익이 相衝하는 데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紀綱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是非를 알아야 한다.

②廉恥를 알게 할 것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우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廉恥를 알게 해야 한다. 이는 위에서 분명히 한 是非가 잘 流行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에 대하여 愼獨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廉恥가 중요합니다. 廉恥는 세상의 風敎를 장려하는 것이며 풍속을 도타이 하는 것입니다.

廉恥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임금이 是非를 분명히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그 是非를 다시 흐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는 임금이 밝힌 是非가 만백성에게까지 流行하는 것을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 된다. 그러므로 임금은 그런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국가의 紀綱은 이런 장애물이 없을 때 비로소 서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愼獨齋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저 嫌疑는 마땅히 피해야 할 것인데, 전하께서는 너무 지나치다고 여기시며, 廉恥는 마땅히 장려해야 할 것인데 전하께서는 작은 예절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전하께서 가능한가를 시험하시는 데 급급해서 억지로 중책을 맡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臣이 進退할 즈음에 이처럼 구차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廉恥를 모르는 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是非를 흐리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嫌疑이다. 즉 嫌疑는 아직 是非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 생기는 것인데, 그들은 이를 피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이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임금은 이런 嫌疑가 있으면 먼저 판단을 보류하고 보다 정밀히 살펴서 是非를 가려야 하는 것이지 그냥 덮어 두어서는 안된다.

愼獨齋는 혐의를 무시하므로써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옴에도 불구하고 임금으로 하여금 다시 살펴서 是非를 가리라 하였으니 참으로 혐의를 피하고 廉恥를 아는 선비라고 할 것이다. 만일 모든 신하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임금은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고 나아가 국가의 紀綱이 확립될 것이다.

③法을 嚴守할 것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우기 위해서는 임금이 먼저 국가의 法을 준수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愼獨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연령에 제한을 둔 法은 지극히 엄중하니 애당초 그 사이에 裁量權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대하는 道理는 여기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法에 어긋남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이미 주었으므로 즉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구차한 것은 아닙니까. 君子가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구차하지 않으니 비록 작은 것이라도 부정한 곳이면 잠시도 머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臣이 지금 주신 것을 받으면 上下가 모두 잘못이니, 한 가지 행동의 피해가 실로 큽니다. 臣은 진실로 하찮은 臣으로 인하여 점점 잘못되어 200년간 내려온 국가의 法을 무너뜨려 훗날의 끝없는 폐단을 여는 짓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임금이 정한 규칙은 임금이 먼저 率先하여 지켜야 한다. 만일 하찮거나 귀찮다고 하여 임금이 먼저 규칙을 어기게 되면 신하들은 이를 본받아 裁量權을 가지려 하고, 그렇게 되면 보다 중요한 일이 닥쳤을 때도 부담없이 규칙을 어기게 된다. 그러므로 임금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법대로 시행해야 한다. 또 혹 잘못하여 本意 아니게 규칙을 어겼다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안 즉시 고칠 것이지 구차하게 변명하거나 그대로 두려고 해서는 안된다. 또한 이것이 바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紀綱이 서는 것이다. 紀綱이 무너지는 것은 사소한 일을 무심히 넘어가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도 愼獨齋는 經國大典 吏典 老人職條에 80세가 되어야 老人職을 주게 되어 있는데 자신은 현재 79세이므로 아직은 그것을 받을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임금에게 법을 엄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④適任者를 登用할 것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우기 위해서는 適任者를 등용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愼獨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非常한 選任은 진실로 非常한 人材를 優待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거기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주고 받는 것이 모두 잘못이니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臣은 그윽히 생각하건대 治世와 亂世의 근원은 나라의 근본에 달렸고, 나라의 근본을 培養하는 것은 오로지 人材를 얻는 데 있습니다. 지금 朝廷에서 특별히 官職을 만들면서 정해진 項目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사실 意圖하는 바가 있을 것이니, 어찌 臣과 같이 천한 사람이 감히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마다 재질이 다르고 관직마다 할 일이 다르므로 兩者의 合致點을 찾아 제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를 임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德量과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 과분하게 은혜를 베풀어 높은 관직을 제수하면 임금으로서는 신하가 無爲徒食하거나 瀆職하는 것을 도와 주는 결과가 된다. 또 감당하지 못할 직책으로 그 신하를 괴롭히는 것이며, 나아가 그 신하의 上官이나 部下에게도 고통을 주게 된다. 이에 上下가 모두 힘들고 괴로우며, 따라서 임금의 명령이 거기서 막히게 되니 紀綱이 서지 않는다. 또한 爲人設官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며, 먼저 꼭 필요한 직책이 있을 때 그 자리에 맞는 인재를 찾아 등용해야 한다. 인재 등용이 공정하지 못할 때는 여러 사람이 서로 힘들고 괴로워서 임금을 원망하거나 自暴自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역시 紀綱이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여 紀綱을 세우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이 그 직책에 적임자인가의 여부를 가려 신중하게 등용해야 한다. 아울러 그 관직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무조건 높은 벼슬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분수에 맞는 관직이 보다 좋은 것이다.

요약컨대 임금의 處事가 공정해야 紀綱이 선다. 紀綱이 서야만 임금의 명령이 여러 大臣과 만백성에게 전달되어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 임금이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是非를 분명히 해야 하며, 둘째 신하로 하여금 廉恥를 알게 해야 하며, 셋째 임금이 먼저 法을 嚴守해야 하며, 넷째 관직에 適任者를 登用해야 한다.

셋째 사사로운 情을 끊고 궁궐을 엄중히 할 것

愼獨齋는 임금이 사사로운 情을 끊고 궁궐을 엄중히 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궁궐을 엄중히 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 되는 것은 옛날부터 善政를 해치는 端緖는 항상 궁궐을 엄중히 하지 못한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대개 戚族의 무리들은 모두 좀스럽고 親狎하여 큰 綱領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궁궐에 줄을 대고 외람되게 총애함을 빙자하여 들어 와서는 밖의 말을 進言하고 나가서는 안의 말을 퍼뜨립니다. 망령되게 윗분의 뜻을 전하되 (그 사이에 자기의) 좋아 하거나 싫어 함을 두어 이로써 놀라게 하며, 거짓으로 아랫 사람의 감정을 빙자하여 순종하거나 거스림을 두어 이로써 시험해 봅니다. 親屬의 婦女子들이 공공연히 출입함에 이르러서는 巢窟이 견고하니, 오랫동안 조금씩 險談하면 賢者가 편안할 수 없고, 깊히 인연을 맺으면 奸邪한 자는 믿는 데가 있어 길들여지므로 흠있는 정치가 날로 일어나고 난잡한 經路가 날로 생기니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엄격히 출입을 금하고,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써 은혜를 베풀고, 왕래하며 말을 옮기는 길을 끊은 연후에 고질적인 폐단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며 朝廷이 맑아질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사사로운 情을 끊고 궁궐을 엄중히 하시면 宗社가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무릇 정치가 잘못되는 것은 사사로운 情에 끌려서 가까운 사람의 말에 현혹되어 정당한 말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국가 大事를 잘 알지 못하는 戚族이나 婦女子가 옆에서 부추기는 말은 큰 일을 그르치기 싶다. 또 임금의 戚族들이 궁궐을 드나들면서 들어와서는 백성들의 여론이라면서 임금을 위협하고, 나가서는 임금의 생각이라 하면서 백성들을 괴롭힌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紀綱이 解弛해져서 임금의 명령이 아래에 잘 전달되어 시행되지 못한다. 이것은 국가를 망치는 길이니 이런 통로를 源泉封鎖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사로운 情을 끊고 궁궐을 엄중히 하기 위해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재물을 나누어 주고 자유로운 궁궐 출입을 막는 것이다. 사사로운 情이 있으면 자주 만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나 임금이 된 자는 公人이므로 이러한 情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또 궁궐은 私邸가 아니라 국가의 최고 관청이므로 아무리 임금이라도 거기에 있는 동안은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그로 인하여 국가에 누를 끼칠 때는 더욱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국가 大事를 책임이 없는 戚族이나 親屬들과 의논하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컨대 戚族들의 궁궐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국가 紀綱을 허무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나라의 근본을 방비하는 일이다.

넷째 어질고 재능 있는 신하를 登用할 것

愼獨齋는 임금이 어질고 재능 있는 신하를 등용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어질고 재능 있는 신하를 등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 되는 것은, 정치는 人材를 얻는 데에 있고 현인을 등용하지 않고 능히 정치를 한 자는 아직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저 天은 한 세대의 사람을 내어 한 세대의 일에 충족하게 하니, 오직 임금이 이를 등용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입니다. 옛날 宋의 神宗이 人材가 없다는 탄식을 하니, 程明道가 핼쓱하게 얼굴 빛을 변하면서 말하길,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천하의 선비를 경멸하십니까?' 하니, 神宗이 말하길, '짐이 어떻게 감히 이렇게 말하리오?' 하기를 거듭 하였습니다. 대저 사람의 사특함과 공정함을 알기는 비록 어렵지만 말을 살피고 얼굴 빛을 관찰하며, 또 그 행적을 자세히 살핀다면 어찌 사람이 숨길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品格은 千差萬別이니 才德이 모두 아름다운 자가 최고이며, 德은 넉넉하나 재능이 부족한 자가 그 다음입니다. 才德이 모두 아름다운 자를 任用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德은 넉넉하나 재능이 부족한 자는 비록 꼭 맞는 德은 없으나 그 사람됨이 善을 좋아하므로 善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 吉함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조정의 선비들은 善惡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이미 偏黨이 나뉘어 是非가 뒤섞여 있는 듯합니다. 어느 黨 사람은 모두 옳다고 하며 그들만 나오게 할 수 없으며, 어느 黨 사람은 모두 그르다고 하며 모조리 물러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일의 是非와 마음 씀의 사특함과 공정함을 보아 정당하게 쓰거나 버려서 등용과 내침을 밝게 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교화되어 착해질 것이니 저절로 分裂에 대한 걱정은 없어질 것입니다. 아첨을 잘하고 유약한 사람은 순박하고 인정이 많다는 이름을 얻기 쉽고, 剛直하고 바른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항상 훼방한다는 罪名을 받는 것이니, 만일 道理와 道理가 아닌 것 사이에서 구하면 諫諍하는 賢人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억지 웃음을 짓고 거짓으로 꾸미는 무리들은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경우가 많고, 굳게 公明을 지키고 公益을 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뜻밖의 욕을 먹는 것이니, 만일 진실과 거짓을 살필 수 있다면 훌륭한 官員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이와 같이 한다면 人材를 얻기 어렵지 않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鑑別力을 밝히시어 어질고 재능있는 人材를 등용하시면 宗社가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임금은 한 국가의 心으로서 국가 전체를 통괄할 책임은 있으나 국가의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할 책임도 능력도 없다. 다만 여러 일을 적임자에게 분배하는 책임이 임금에게 있다. 즉 임금은 어떤 일을 어느 신하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타당한가를 판단하고 시행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것이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을 맡을 책임자는 그 시대 그 나라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또한 天地 造化의 위대함이다. 즉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처리할 人材도 함께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이 이것을 모르고 人材가 없음을 한탄하는 것은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임금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 시대 그 나라 안에서 적임자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일 적임자를 찾지 못하면 그 일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어떤 일의 적임자는 德과 才能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하지만 부득이 하여 그런 인재를 찾지 못했을 때는 우선 德이 있는 신하를 고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德은 있으나 재능이 부족한 신하는 혼자서는 그 일을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모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德은 없고 재능만 있는 사람은 안목이 좁기 때문에 우선은 그 일을 잘 처리한 듯하나 오히려 일을 더욱 그르칠 가능성이 많다.

대저 人材가 없는 것은 탓할 일이 못되며 임금의 감식 능력이 부족함만을 걱정하면 된다. 인재를 찾는 것은 임금이 해야 할 직무에 속한다. 이제 愼獨齋가 제시한 知人하는 방법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①察言觀色과 行蹟審査

사람을 안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첫째 그 사람의 말이 事理에 합당한가를 검토해야 하며, 둘째 그 사람의 얼굴 빛이 정숙하고 온화하여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 없는가를 살펴야 하며, 셋째 言行의 一致 與否와 行蹟의 善惡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검토하여 보면 才德을 겸비한 자, 德은 있으나 才能이 없는 자, 德은 없으나 才能이 있는 자, 才德을 모두 갖추지 못한 자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才德을 겸비한 자가 最上이며, 德은 있으나 才能이 없는 자가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才德을 겸비한 자를 찾아 쓸 것이며, 일을 맡긴 다음에는 신임해야 한다. 다음으로 才德을 겸비한 자를 찾지 못했을 때는 有德無才한 자를 쓰고 재능이 있는 자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②色目을 가리지 말 것

본래 善黨과 惡黨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느 黨 사람은 모두 착하고 어느 黨은 모두 惡하다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 반드시 위 ①의 방법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여 善人을 쓰고 惡人을 버리면 모두 교화되어 편당을 가르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③虛名에 眩惑되지 말 것

대저 아첨을 잘하고 柔弱한 사람은 순박하고 인정이 많다는 칭찬을 받기 쉽고, 剛直하고 바른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항상 妨害한다는 陋名을 입는다. 억지 웃음을 짓고 거짓으로 꾸미는 무리들은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경우가 많고, 굳게 公明을 지키고 公益을 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뜻 밖의 욕을 먹는다. 그러므로 임금은 輿論에 현혹되지 말고 반드시 實狀을 자세히 살펴서 是非를 가려야 한다.

④대가 센 사람을 버리지 말 것

대개 임금은 柔順한 사람을 좋아하고 대가 세서 부리기 어려운 사람은 싫어 하나 이것은 賢人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賢人 중에는 伊尹같은 사람도 있으나 伯夷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니 항상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인은 道에 맞게 부리지 않으면 결코 부릴 수 없는 것이니, 자기 비위에 거스린다 하여 내치면 直言은 들을 수 없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진정한 賢人은 手足처럼 부리면 안되며 오히려 스승같이 모셔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줄 것

愼獨齋는 임금이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줘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 되는 것은 임금과 백성은 서로 의지하는 것이나 백성이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哲王은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으로서 급선무를 삼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生을 좋아 하고 죽음을 싫어 하며, 富를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 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지금 다만 백성의 고통을 구제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좋아 하는 것을 좋아 하고 그들이 싫어 하는 것을 싫어 하지 않는다면 어질다는 소문이 퍼져도 곤핍한 백성들에게는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질지 못한 임금도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백성이 구제받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즐기려는 욕심을 이기기 어렵고 私邪를 극복하지 못하며, 한 사람이 이익을 좋아 하니 百官이 道義를 잊어서 반드시 백성을 피폐하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며 사치를 버리고 검소함을 높여서 백성을 구제하는 근본을 삼으시면 宗社가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서로 의지하는 것이니, 백성은 임금의 통치에 의하여 서로 임무를 할당받아 협력하며 살아가고, 임금은 그러한 노력의 댓가로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백성이 먼저 있으므로 임금이 있는 것이지, 임금이 있은 후에 백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근본은 백성에게 있다. 백성이 모두 흩어지면 임금도 또한 필요 없게 된다. 따라서 임금은 항상 백성의 편에 서서 백성을 위해 일해야 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다. 백성이 좋아 하는 것은 안정되고 넉넉한 삶이며, 싫어하는 것은 불안하고 가난한 삶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해야 할 일은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이 불안하고 가난하게 사는 이유는 임금이 재물을 착취하거나 백성을 함부로 동원하여 死地로 몰아 넣기 때문이다. 결국 백성의 고통은 임금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임금이 먼저 백성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관료들도 임금을 핑게로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한다.

그 방법으로는 임금이 먼저 私欲을 버리고 사치하지 말아야 한다. 임금이 게으르고 사치하면 궁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본받고, 나아가 대신들이 또한 따른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날로 피폐하여 살아가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임금이 검소하여 금이나 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비단 옷을 입지 않으면 시장의 물가가 오르지 않고, 그러면 백성들의 생활이 윤택해진다. 결국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임금이 먼저 근면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여섯째 말을 앞세우지 말고 實行할 것

愼獨齋는 임금이 말을 앞세우지 말고 實行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實效를 재촉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 되는 것은 천하의 근심은 有名無實한 것 보다 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갓 이름뿐이고 實이 없다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程子가 말하길, '사람의 道理는 오직 忠信에 있다. 만일 忠信이 아니면 어찌 다시 사물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항상 잘 다스리고자 하나 지금까지 잘 다스려지지 못한 것은 바로 實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임금께서 길을 바꿔 착실히 功을 들여 용감히 힘써 나가서 반드시 實效를 기약하여 음식을 먹는 자가 배부르고 길을 가는 자가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학문은 聖賢을 바라면서 한갓 虛文을 일삼지 말며, 정치는 堯舜의 정치를 하기 위하여 반드시 實效에 힘을 들여야 합니다. 미미한 한 가지 생각과 자질구레한 한 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성의를 다하지 않음이 없으면 실행하는 데에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는 사람은 모두 스스로 힘쓰는 것이 현재의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대개 근래 벼슬아치들 사이에는 편안히 노는 것이 流行이 되었고 병사들 사이에는 겁 많고 나약한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敎化하는 날에 마땅히 급급히 留念해야 할 것은 이외에는 마땅히 다른 묘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힘쓰는 道理는 하루 아침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한 걸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점차 行하고 때때로 시행하기를 반드시 임금의 心身으로부터 시작하여 나아가 말단적인 事業에 이르기까지 각각 誠意를 다하고 그 끝까지 힘써 도달하지 않음이 없은 연후에야 일마다 실마리가 있고 井然하여 문란하지 않음이 그물의 벼리를 끌고 갓옷의 要領을 드는 것 같습니다. 안으로는 朝廷이 저절로 높아져서 공경을 한가지로 하며 공손함을 합하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며, 밖으로는 변방이 날로 견고해지고 윗 사람을 부모처럼 여기고 장수를 위해 죽는 풍습이 있을 것이니, 어찌 도적을 근심하며 어찌 外敵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만일 한갓 스스로 힘쓴다는 이름만 있고 스스로 힘쓰는 실상을 보이지 않으면서 공허하게 큰 소리만 치면서, 스스로 힘쓴다, 스스로 힘쓴다고 하면 화를 부르는데 알맞을 것이니 도리어 어찌 도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말치레를 버리고 實效를 재촉하시면 宗社가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세상에 말만 앞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일은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이든 조금씩이라도 실행해 나가야 완성할 수 있는 것이지 말치레는 아무리 쌓아도 성과가 없다. 善政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도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善政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제 愼獨齋가 제시한 방법을 자세히 논하면 다음과 같다.

①舊習을 버릴 것

실행하는 데 있어서의 가장 큰 적은 舊習에 얽매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용감하게 실천하지 않고는 實效를 거둘 수 없다.

②목표를 높게 세울 것

작은 성과에 安住하면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학문은 聖賢을 기약하고, 정치는 堯舜을 기약하여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精誠을 다해야 한다.

③스스로 勉勵할 것

실행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무엇이든 자신이 힘써야 하며, 이 밖에 다른 묘책은 없다.

④지속적으로 끝까지 誠意를 다할 것

결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한 걸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씩 間斷없이 계속해서 끝장을 보아야 한다. 또한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초조해 해서도 안된다.

愼獨齋가 제시한 6箇項의 統治者 倫理는 體用理論에 입각하여 제시한 것이다. 이제 이를 體用理論에 의하여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은 萬百姓의 중심으로서 국가 전체의 體가 되며, 또한 임금의 心은 임금 一身의 體이다. 따라서 통치자인 임금의 윤리는 體인 心에 관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첫째 덕목인 德量을 넓히는 것은 임금 자신의 心을 넓게 가져 모든 신하나 백성의 의견이 모여 들어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다. 즉 體에 많은 것을 담아 놓을수록 流行하여 나갈 것이 많을 수 있다. 임금의 소견이 좁아 體에 배양한 것이 없으면 베풀어 시행할 때 流行·發現할 알맹이가 적게 된다. 그러므로 愼獨齋는 최우선적으로 德量을 넓힐 것을 말하였다. 이는 體인 임금의 德을 맑은 물이 용솟음쳐 나오듯이 하려는 것이다.

둘째 덕목인 신하들의 紀綱을 세우는 것은 앞에서 넓힌 德量 속에 있던 것이 잘 流行할 수 있도록 하는 德目이다. 임금이 넓힌 德量에 따라 일을 처리할 때 그것이 물흐르듯이 막힘없이 흘러야 되는데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신하들의 紀綱이 서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紀綱을 세우는 것은 임금의 명령이 제대로 流行·發現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이며 물꼬를 트는 일이다. 즉 임금의 德量은 體이고 紀綱은 用이다. 紀綱이 서 있을 때 임금의 德量이 流行·發現할 수 있다.

셋째 덕목인 사사로운 情을 끊고 궁궐을 엄중히 하는 것은 위에서 세운 紀綱이 무너지는 것을 방비하는 것이다. 위로는 임금의 德量을 편협하게 하는 길을 제거하는 것이며, 아래로는 신하들의 紀綱이 바로 서도록 하는 것이다. 즉 다른 모든 신하들의 紀綱이 바로 서 있더라도 戚族이나 親族에 이르러서 임금의 명령이 막히거나 왜곡되면 국가 전체에 임금의 德이 완전하게 流行할 수 없다. 친척들을 편애하거나 지나치게 너그럽게 용서하면 한 쪽 구석에 고여 썩은 물이 전체를 흐리게 하듯이 임금의 德이 친척들에 이르면 고여서 썩게 되고 그러면 국가 전체가 썩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열거한 두 덕목이 無爲로 돌아 간다. 그러므로 愼獨齋는 특히 이를 경계한 것이다.

넷째 덕목인 어질고 재능 있는 신하를 登用하는 것은 임금의 德이 流行하는 데 있어서 중간 단계의 體를 세우는 것이다. 국가 전체의 體인 임금의 才德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모든 백성을 관장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德이 잘 流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간중간에 貯藏所를 두어 재충전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六曹 등으로 나누는 것은 임금이 가진 德量을 성질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며, 지방 守令은 임금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배분하는 것이다. 이때 각 관원은 그 직책에 맞는 最適者를 선발하여야 임금의 德이 왜곡되지 않고 다시 힘을 얻어 流行·發現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간 단계의 體에 해당하는 관원을 등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最善인가 하는 점이다.

다섯째 덕목인 백성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은 임금의 德이 각 관원을 거쳐 만백성에게까지 流行·發現하였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임금은 體이고 백성은 用이므로 體가 用에 流行·發現하여야 비로소 완전하다. 한편 逆으로 보면 만백성은 임금의 天이다. 즉 백성들의 추대에 의하여 임금이 되었으며, 백성이 있으므로 임금이 있다. 그러므로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것은 자신의 근본인 天이 자신에게 부여한 職分을 완수하였는가를 확인하고, 다시 그를 鞏固히 하는 것이다. 즉 임금 자신의 體인 백성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은 자신의 뿌리인 體를 鞏固히 하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天이며 體인 백성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며, 자신이 백성의 用으로서의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섯째 덕목인 말을 앞세우지 않고 實行하는 것은 위에서 관리를 등용하여 백성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 있어서의 헛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즉 임금의 명령이 名目이나 書類 上으로만 流行·發現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확실히 하고자 함이다. 名目만 있고 實이 없을 때는 지금까지 제시한 모든 덕목이 虛事가 된다. 그러므로 愼獨齋는 끝에서 다시 이를 보완하도록 한 것이다.

五. 結語

萬物의 役割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先天的으로 먼저 정해진 다음 그 役割에 따라서 氣가 모이고 결합하여 탄생한다. 즉 만물의 탄생보다 그 役割이 먼저 要求되고 그 役割에 알맞게 形狀과 材質이 결정된다. 따라서 役割은 만물의 存在理由이며 權利이다. 만일 役割이 없다면 그 사물은 宇宙 안에 존재해야 할 이유도 권리도 없다. 따라서 役割은 만물의 의무이며 동시에 권리이다. 즉 만물은 자신의 存在理由인 役割을 충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으며, 그런 역할이 필요한 한에서 자신은 宇宙 안에 존재할 권리를 갖는다. 그런데 만물은 상호간에 이 의무와 권리를 共有한다. 즉 한 사물은 다른 사물의 역할을 補助하는 의무를 가지며, 다른 사물은 그런 보조를 받음으로써 그 사물에게 존재할 권리를 부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물이 모두 서로 맞물려 連鎖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사람이 가진 役割은 만물이 각자 가진 役割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즉 宇宙의 정신으로서 宇宙를 維持·管理하고 그 속의 만물을 統治하여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또한 서로 役割을 分擔하여 인간 전체가 宇宙 안에서 해야할 역할을 수행한다. 이 중에서 임금이 가지는 役割은 사람들을 잘 통치하여 사람 전체가 다른 만물과 서로 分擔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람 전체의 중심으로서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調和시키며 각자의 力量에 맞는 일을 분담시킬 責務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막중한 職分을 가지고 있는 統治者인 임금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보다 완벽한 倫理規範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愼獨齋는 임금의 職分倫理를 體用理論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나누어 그 이유와 실천 방법을 제시하였다.

1) 德量을 넓힐 것.

2) 일처리를 公正하게 하여 紀綱을 세울 것.

3) 사사로운 情을 끊고 궁궐을 엄중히 할 것.

4) 어질고 재능 있는 신하를 登用할 것.

5)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줄 것.

6) 말을 앞세우지 말고 實行할 것.

德量은 體이고 紀綱은 그 體가 流行하는 通路이다. 궁궐을 엄중히 하는 것은 그 通路를 막을 장애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것이다.

賢臣을 쓰는 것은 중간의 體를 세우는 것이며, 백성의 고통을 더는 것은 임금의 德이 중간의 신하를 거쳐 백성에게까지 流行·發現하는 것이다. 實效를 재촉하는 것은 임금의 德이 실제로 백성에게까지 流行하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요약컨대 우주를 하나의 有機體로 보는 宇宙觀은 나아가 국가도 하나의 有機體로 본다. 有機體에는 반드시 大腦나 心臟과 같은 體가 있고, 그 體가 流行·發現하는 用이 있는 것처럼, 국가에 있어서는 임금은 體이고 백성은 用이다. 따라서 국가 안의 秩序와 調和 등은 반드시 임금으로부터 發源한다. 즉 국가의 統治, 紀綱, 道德性, 秩序, 調和 등은 반드시 임금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이전에 임금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즉 임금이 皇極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職分을 가진 임금은 그 직분에 맞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가지며, 그런 의무를 다함으로써만 임금으로서의 권리를 가진다. 즉 임금으로서의 직분을 다하지 못할 때는 임금으로서의 권리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임금으로서의 職分을 다하기 위해서는 愼獨齋가 제시한 바와 같은 倫理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愼獨齋 思想에 있어서의 統治倫理], {愼獨齋思想硏究}, 沙溪·愼獨齋兩先生紀念事業會, 1993. 6.(pp.249∼286)

[참고문헌]

·經書 ([大學]·[論語]·[孟子]·[中庸]), 成大 大東文化硏究院, 1979.

·朱子大全, 影印本, 1978.

·朱子語類, 影印本, 1978.

·金長生·金集, [沙溪·愼獨齋全書], 光山金氏文元公念修齋, 1978.

·大學或問·中庸或問, 景文社.

·性理大全, 影印本, 1978.

·張源宗 外 2人, [職業과 倫理],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5.

·韓?劤 外, [譯註 經國大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5.

※자료출처:http://www.sungshin.ac.kr/~yyoon/html/nonmun.html